1933년 : 4월 10일 아버지 박찬홍(朴贊洪)과 어머니 김어지(金於之)의 차남으로 일본 동경부(東京府) 도남다마군(稻南多摩郡) 성촌실야구(城村失野口) 1004번지에서 출생. 아버지는 모래 채취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형과 누이동생 둘이 있다.
1936년 : 4세 때 가족이 모두 귀국하여 어머니의 고향인 경남 삼천포시 서금동 72번지에 정착했고, 이곳에서 성장함.
1937년 : 누이 동생 순애 출생.
1940년 : 삼천포 히노데(日出)국민학교에 입학함. 이 학교는 뒤에 수남(洙南)국민학교로 개칭했고, 현재는 삼천포초등학교임.
1942년 : 누이 동생 순엽 출생.
1946년 : 수남국민학교 졸업 후, 3천 원이 없어 신설된 삼천포중학교에 진학을 못하고 신문배달을 하던 중 삼천포여자중학교의 가사 담당 여선생의 도움으로 그 학교 사환으로 들어감. 그때 삼천포여자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시조시인 김상옥 선생을 만나 감화를 받고 시를 쓸 결심을 굳혔음.
1947년 : 삼천포중학 병설 야간중학교에 입학, 낮에는 여중에서 급사로 일하고 밤에는 수업을 들음. 성적은 전교 수석. 김상옥 선생의 첫 시조집 “초적(草笛)”을 살 돈이 없어, 그것을 공책에 베껴 애송하는 등 시에 더욱 심취하였음.
1948년 : 교내신문 “삼중(三中)” 창간호에 동요 ‘강아지’, 시조 ‘해인사’ 발표.
1949년 : 경영부진으로 야간 중학교가 폐쇄되어 주간 중학교로 흡수됨. 이때 야간 중학교에서 전교 수석을 한 덕택으로 학비를 면제받고 주간 중학교 학생이 되었음. 제1회 영남예술제 ‘한글시 백일장’에서 시조 ‘촉석루’가 차상으로 입상. 당시 장원이던 이형기와 친교를 맺음.
1950년 : 진주 농림에 다니던 김재섭(金載燮), 김동일(金棟日)과 함께 동인지 “군상(群像) 펴냄.
1951년 : 4년제 중학 졸업 후 삼천포고등학교 2년에 편입학함. 이때 처음으로 술을 시작함.
1953년 : 삼천포고등학교를 수석 졸업(제1회). 이때가 가장 부지런히 시작을 한 시기였음. 모윤숙 추천으로 시조 ‘강물에서’가 “문예”지 11월호에 발표됨. 피난지 부산 동광동 3가 8에서 제2대 민의원이었고 중학교 시절 교장이었던 정헌주(鄭憲住) 선생의 집에서 식객노릇을 함.
1954년 : 은사 김상옥 선생의 소개로 현대문학사에 취직, 창간 준비를 시작함. 당시 주간은 조연현, 편집장은 오영수, 편집사원으로는 임상순, 김구용이 있었음.
1955년 : “현대문학”에 ‘시조 섭리'(6월호, 유치환), ‘시 정적'(11월호, 서정주)으로 추천을 완료, 김관식, 신동준 등과 함께 등단함. 이해에 고려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함(3년 중퇴).
1957년 : 시 ‘춘향이 마음’을 발표하고 현대문학사 제정 제2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함. 고려대학교를 3년 중퇴하고 “문예춘추”와 “대한일보” 기자로 활동 시작함.
1958년 : 육군 입대. 1년 6개월 근무하고 예비역으로 편입됨.
1961년 : 구자운, 박성룡, 박희진, 성찬경 등과 함께 “60년대사화집” 동인으로 활동.
1962년 : 김정립 여사와 결혼. 하숙을 하던 서울 종로구 누상동 166의 20번지에서 신접살림을 차림.
1962년 : 처녀시집 “春香이 마음” 출간(신구문화사).
1963년 : 장녀 소영(召英) 출생.
1964년 : “현대문학사”를 그만두고 상중당에 입사하여 “문학춘추” 창간에 참여, 1년 근무(“문학춘추”의 판권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자 퇴사함).
1965년 : 경우당(景友堂) 발행의 월간 “바둑”지 편집장으로 입사했다가 6개월만에 그만두고 “대한일보” 기자로 입사, 3년 근무.
1966년 : 장남 상하(祥夏) 출생.
1967년 : 남정현의 ‘분지’ 사건 공판을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아 고혈압으로 쓰러져 6개월 가량 입원. “대한일보”에서 퇴사함.
1967년 : 문교부 주관 문예상 수상.
1969년 : 삼성출판사 입사.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11-83번지에 처음으로 집을 마련함. 다시 고혈압으로 쓰러짐. 이때의 고통과 이 고통에서 벗어난 기쁨을 시로 엮은 것이 제2시집 “햇빛 속에서”임.
1970년 : 한국시인협회 주관으로 제2시집 “햇빛 속에서” 출간(문원사). 이때부터 “서울 신문”, “대한일보”, 국제신보” 등에 바둑 관전기를 쓰기 시작함.
1970년 : 차남 상규(祥圭) 출생. 이듬해(1971년) 상규가 뇌막염으로 메디칼 센터에 입원했다가 17일만에 퇴원함.
1972년 : 직장 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나 홀가분한 자유인이 됨. 산문 등의 원고료로 생활비 충당함.
1973년 : 일본어를 번역하여 생활을 꾸려감.
1974년 :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으로 피선됨.
1975년 : 제3시집 “천년의 바람” 출간(민음사). 대한기원 이사가 됨.
1976년 : 제4시집 “어린 것들 옆에서” 가 국민학교 동창 김욱상의 도움으로 출간(현현각)됨.
1977년 : 제9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제1수필집 “슬퍼서 아름다운 이야기” 출간(경미문화사). 서울 묵동 177의 3번지로 이사함.
1978년 : 제2수필집 “빛과 소리의 풀밭” 출간(고려원).
1979년 : 제5시집 “뜨거운 달” 출간(근역서재).
1980년 : 제3수필집 “노래는 참말입니다.” 출간(열쇠). 위궤양으로 한양대학병원에 약 보름간 입원.
1981년 : 제6시집 “비 듣는 가을나무” 출간(동화출판공사). 고혈압, 위궤양으로 40여일간 한양대학병원에 다시 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