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신문사 정정 및 반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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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지난 2006년 12월 12일자 1면 ‘조선막사발 터 논쟁 종지부’ 제하의 기사에 대한 정정 및 ‘가야비파구룡요’를 운영하고 있는 김남진 씨의 반론을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결과에 따라 독자 여러분께 알려 드리며, 김남진 씨께 사과드립니다.
본지 지난 2006년 12월12일자 1면에 ‘조선막사발 터 논쟁 종지부’ 제하의 기사에 보도된 내용 중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다음과 같이 정정 및 반론 내용을 보도합니다.
첫째, 사천시가 88억원을 들여 추진한 ‘사천시 조선막사발 도요지 복원사업’이 김남진 씨가 운영하는 가야비파구룡요에서 가마터가 발굴되지 않아 사천시가 사업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고 보도했으나 이 사업이 공식적으로 포기된 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둘째, 사천시가 지난 3월30일 ‘사천 조선막사발 도요지 복원 사업 간담회’에서 복원사업을 공식적으로 포기한다는 등의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으나 그 간담회는 그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한 자리가 아니였으며 실제로 어떠한 결정도 내려진 바 없었습니다.
셋째, 간담회 내용 중 복원사업 중단과 이 사업을 위해 확보키로 한 ‘88억원의 예산 도예센터 건립’, ‘사업추진 당시 조사예정지로 결정됐지만 조사가 없었던 사천시 곤명면 발굴조사 예산 500만원 확보’, ‘이도다완 가마터 또는 아가노 도자기 고향 인정이란 공식용어 사용금지’ 등은 실제 거론이 되었는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넷째, 간담회 참석자로 보도한 내용은 참석대상자와 참석자가 혼동되어 정확한 것이 아니며 참석자는 공무원을 포함하여 9명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다섯째, 사천 곤명요 김영태씨의 기고문을 인용하여 김남진 씨의 도요지가 도자기가 아닌 옹기가마터로 판명됐다고 보도했으나 이에 대해 김남진 씨는 옹기가마터가 아닌 고급 도기가마터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입력 : 2007년 01월 02일 16: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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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문>"조선 막사발터 홍보는 '역사왜곡'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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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문화재 연구원이 우천리 가마터 시굴조사시, 교란되지 않은 층에서 발견된 완형의 찻잔(고려다완). 사진출처 및 설명:김남진
≪반 론 문≫
김영태가 기고한 글 중 시굴조사에 관해(경남문화재 연구원) 설명하고자 한다.
우천리 도요지의 시굴조사 목적은 남해안 관광벨트사업과는 별개로 진행된 도지정기념물 제233호로서 지정된 문화재를 시굴조사 했으며, 여기에 대한 경남도, 사천시의 공식 확인공문을 참조하면(시행 문화예술과-2015, 시행 문화관광과-1210).
▷ 2002년에 실시한 사천 우천리 도요지 시굴조사의 조사목적은 조사기관인 경남 문화재연구원의 시굴조사 결과 약 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듯이, 유적의 범위를 확인하고 성격파악 및 조업연대를 확인하여 유적의 보존대책을 수립하고 보다 적극적인 유적의 활용방안을 마련하는데 있음. 끝.
그러나, 김영태는 사천시청 열린 시장실 인터넷과(2006.1.11) 진주신문 기고문(2006.1.10 790호 11면)을 통해 「2000년 5월 3일 문화재 자료 233호로 조사없이 지정된 우천리 도요지를 2002년 7월1일부터 2003년 1월 10일까지 약 6개월가량 김전계의 후손과의 연관성을 밝히고자 시굴조사를 시작했다.」 고 하면서 시굴조사기간중에 일본인이 화전리에 한 ·일 영원한 우호의 비를 건립한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했다.
그리고, 시굴조사 결과 이도다완 가마터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으며, 경남 문화재 연구원이 시굴조사현장 자료집에서 우천리 도요지에서 확인된 자기와 일본 후쿠오카현 다가와군 아카이케쵸 아가노야끼 자기와의 상호관계는 이번조사에서는 확인 되지 않았으며 추후조사를 실시하여 확인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의 시굴조사현장 자료를 교묘히 활용. 이를 존계 후손과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한 목적으로 왜곡시켜 아가노와는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면서 인터넷등을 통해 기고 하면서 한일 양국 행정에서 세운 한·일 영원한 우호의 비를 철거하라면서 역사왜곡 운운하면서 우천리 가마터와 이를 발견 세상에 알린 필자이하 경남도 문화재 관계자, 사천시장등을 집단적으로 매도하고 있다.
이에 관해 필자가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처음 밝혔듯이 우천리 가마터는 1996년 본인이 발견, 학계, 행정등에 신고하고 전문가들(최낙선, 박종환, 민영기, 송선상 문화재 관리국 장금정)등에게 가마터 현장을 답사토록하여 이곳이 고려때부터 조선중엽까지의 가마터로서 이도의 전문가 도예인 아인 박종환, 민영기 선생은 이도다완 가마터 확률이 높다는 평가에 따라 필자가 발행하는 사천문화신문에 90여회 그 역사에 비중을 두고 게재해 왔다.
사천시 열린시장 인터넷(2006.2.7) 사천시 공식 답변은,
도지정 기념물 제233호인 사천우천리 도요지는
1996년 8월 사남면 우천리 임도개설 도중 가마터를 발견하여 신고가 됨으로써 1996년 10월 경남도 문화예술과 이경기 학예연구사 현지 확인이 있었으며,
2000년 6월 경남도 문화예술과 이범홍 학예연구사 및 신라대학교 안춘배 교수의 현지조사가 있었고,
2001년 2월 8일 경상남도 문화재위원회 박동백, 삼봉근, 안춘배 등 3명의 위원이 문화재지정 판단을 하기 위하여 현지에 예비조사를 사촌리 도요지와 병행하여 실시하고 두곳을 지정신청토록 하여
2001년 2월 26일 우천리 도요지와 사촌리 도요지를 동시에 경상남도에 지정 신청하여
2001년 5월 3일자로 우천리 도요지는 도지정기념물 제233호, 사촌리 도요지는 도지정기념물 제23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01년 7월 1일부터 2003년 1월 6일까지 우천리 도요지 시굴조사,
2002년 8월 18일부터 9월 25일까지 사촌리 도요지를 시굴조사한 바 있으나
확인된 요지의 정밀조사, 구룡저수지 수면 아래에 분포하고 있는 요지나 민묘 부근 요지의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조사기관의 의견이 있었으나,
민묘의 이장, 발굴조사비 확보 등의 문제로 인하여 현재까지 조사를 착수치 못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아가노야끼와 사천시 양국에 세운 우호의 비 철거를 주장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도 공문서로 설명하면 이렇다.
〈질의요지〉 한·일 영원한 우호의 비 설치 논란에 대하여 행정당국에서 명확히 밝혀달라.
〈 답 변 〉 사천시 사남면 화전리의 정자나무 아래에 세워진 「한·일 우호의 비」는 아가노야끼의 도조 존계선생에 대하여 (조선국 사천현 십시향 출신 사기장, 이라는 십시가의 300년전의 기록에 근거하며 아가이케쵸의 방문이 수년전부터 민간차원의 연구와 비공식 교류가 있어 왔으며, 2002년 7월 18일 일본 아카이케쵸 관계 공무원 4명이 우리시를 방문하여 아가노야끼 400년제 기념비의 디자인, 문안, 설치 장소등을 협의함으로써 2002년 7월 25일 우리시 조정위원회에서 이를 심의 결정하여 2002년 9월 10일 설치하게 되었음.
그리고, 조선막사발 도요지 복원사업에 관련(진주신문보도) 필자의 확인요구에 대한 회신 문서를 요약해 보면(시행, 문화관광과-15887).
우천리 도요지를 발굴조사없이 두는 이유에 대하여서는,
매장문화재를 발굴조사함은 그 복원을 목적으로 해야하나, 우천 도요지의 대부분이 저수지에 수장되어있어 사실상 발굴이 어려워 현상태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영태의 인터넷인 -한·일 영원한 우호의 비에 대하여는 사천시 홈페이지 시장에게 바란다(2006.1.11)와 타 기관에 5차례에 걸쳐 접수된 인터넷 민원으로써 「한·일 영원한 우호의 비」의 설치에 관하여는 시정 조정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설치하였고,
비의 철거에 대하여는 현재로서는 검토하지 않고 있으며, 동일한 민원으로 3회 답변한 사항으로써 민원 사무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2조(반복 및 중복 고충 민원의 처리)의 규정에 의하여 내부 종결처리 하였습니다.
그리고, 필자가 문화관광부에 확인한 내용도 알려드리면(시행,관광지원팀- 1531) 동사업은 2000년 7월「(남해안 관광벨트 개발계획)확정시 이에 포함되었으며, 그간 복원사업에서 중요한 관련 유적지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부에서는 2005년 이후 현재까지 관련 예산(국고)를 지원하지 않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필자가, 김영태가 개인 인터넷 사천시장실, 진주신문에 기고한 내용중 공식문서로서 확인된 것만 자료를 통해 반론해 보았다.
판단은 독자들이 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김영태가 주장하는 옹기가마 운운하는 것은 당시 시굴조사를 시행하던 경남문화재 연구원이 당시까지만 해도 희귀한 도편들이 (녹유,계통도편) 많이 나오니까 각 전문가들을 현장확인시키는 자료배포집에서「옹기가마터」란 용어를 사용한 것에 불과하며 시굴조사 최종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찾기힘든 「고급도기가마터」라고 정식 발표했다. 그리고 정확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정밀 발굴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발굴까지 가야만 어떤류의 가마터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는데, 김영태는 시굴조사 목적과는 전혀 다른 「조선막사발 도요지 복원사업」에 이 시굴조사서를 인용하여 마치 우천리 가마터가 옹기가마터이며 이도완이 나오지 않는 가마터라며 시굴목적이 다른 보고서를 인용하여 주장해 왔다.
남해안관광벨트, 조선막사발 도요지 복원사업(2005.~2009)을 위한 우천리 도요지 시굴 발굴조사는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문화재차원의 시굴조사과정에서 완벽한 찻사발(일명 고려다완)이 온전한 형태로 교란되지 않은 층에서 발굴되어졌다.(사진참조)
만약, 목적사업이 조선막사발 도요지 복원사업이었다면 이 찻잔(고려다완)의 발굴 하나만 갖고도 조선막사발 도요지 복원사업은 가능한 것임을 주지시키며, 특히 과학적으로 검증한 이도다완 태토가 있는 곳이 바로 우천리 도요지 임을 알아야하며 우천리 도요지의 진정한 가치 평가도 이곳에서 찾은 찻잔(고려다완)과 이도다완의 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 이도다완 가마터를 찾고자 하는 것은 그 흙을 찾기 위한 몸부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지역에 살면서 그 지역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 일본에 피납된 옛 조선도공의 뿌리찾기 및 이곳에서만 태동될 수 밖에 없었던 특이한 역사(고려다완 이야기)를 발표(경남매일신문) 하는 시점에 이런 논쟁을 불러일으킨 점에 대하여 진주신문에 유감을 표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김남진 가야비파구룡요 운영자
입력 : 2007년 01월 03일 11:34:18 / 수정 : 2007년 01월 03일 11: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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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 열린시장실 인터넷으로 올리는 것은
곤명요 김영태씨가 2005년도부터 우천리 도요지에 대한 역사왜곡
조레제기를 했으며 얼마전에는 진주신문을 통해 기고를 했으나
언론중재위에서 진주신문사에 시정과 반론명령에 의해 공식적으로
공개된 자료이므로 시청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답변할 필요는 없음을
알려드리며 그동안 잘못 알려졌던 우천리 도요지에 대한 역사성과
그에 대한 사실을 확인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