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명면지



곤명면지

13. 연당재기(蓮塘齋記)   못을 파고 연(蓮)을 심어 당(堂)을 이루어 풍월(風月)을 소영(嘯詠)하여 정성(情性)을 길러 여가(餘暇)로 양붕(良朋)과 더불어 거문고(琴)와 바둑(朞)으로 소일(消日)하고 시주(詩酒)로서 망세(忘世)하는 사람 그 기상(氣像)과 품격(品格)이 우러러 보이니 이는 옛날 일민(逸民)의 류(流)이니라.   광무년간(光武年間)에 연파(漣坡) 처사(處士) 김공(金公)이 괴걸(魁傑) 한자질(資質)로서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일찍이 서울에 노닐면서 사대부(士大夫) 아는이(知人)을 만나 부기영화(富貴榮華)를 발돋움하고 기다렸더니 세급(世級)이 나리을 보고 이에 탄식하여 말하기를 어찌 돌아가지 아니하오 하거늘 전원(田園)이 장차 거칠어 지리라 하고 굽혀서 돌아와 고향(故鄕)인 연평(蓮坪)에 처(處)하니 연평(蓮坪)은 농사(農事) 짓기에 알맞은 땅이 없다.

  두류산(頭流山)이 동남쪽 오육십리(五六十里) 밖에 있어 옛날에는 진양(晋陽)에 예속(隸屬) 되었다가 자주 바뀌어 이제는 사천군(泗川郡)에 속(屬)하고 있다. 이곳은 평지(平地)가 수리(數里)이며 대로(大路)가 중통(中通)하고 장강(長江)이 북(北)으로 둘려서 흐르고 좌우(左右)에는 산봉우리(峯巒)가 둘러 서로 읍(揖)하고 중간(中間)의 일봉(一峯)이 둥글게 솟아 평평한 것은 연화봉(蓮花峰)이다. 이로부터 서쪽으로 다시 아름답고 높은 한 봉우리가 있어 강상(江山)에 다다르니 (臨) 옥녀봉(玉女峰)이다. 양봉(兩峰)이 상거(相去)하여 불과(不過)일리(一里)에 쌍봉(雙峰)이 대치(對峠)하고 양봉(兩峰)으로부터 산 줄기가 내려와 다시 각각 작은 맥(脈)이 용(龍)이 움틀거리는 듯한 모양으로 들을 두르고 있는데 골짜기가 깊고 샘(泉)물이 맑아 임목(林木)이 울창하여 행로(行路)에서 보면 초사(草舍)와 와동(瓦棟)이 즐비(櫛比)하여 송음(松陰)과 죽영(竹影) 사이로 은근히 보이는 곳이 김씨(金氏)의 세장(世庄)이다.   공(公)이 고장(故庄)에 돌아와 영역(瑩域)을 성소(省掃)하고 농묘(聾畝 = 논밭)를 정리(整理) 한 후 거소(居所)가까이 재(齋) 이실(二室)과 일당(一堂)을 이루고 연당재(蓮塘齋)라 서(署)함은 사실(事實)을 기록(記錄)함에 있었다. 그리고 날로 재(齋)에 거쳐(居處)함은 선조(先祖)를 위(爲)함이오 또 빈우(賓友)도 영접(迎接)하며 자손(子孫)도 과업(課業)시켜 여년 (餘年)을 즐거워 하였으며 세상(世上)의 득상영욕(得喪榮辱)은 하늘에 뜬 구름같이 여기니 이른바 고상기사자(高尙其事者) 같았었다.   그이 이목(耳目)이 총명(聰明)하였고 근력(筋力)이 강강(康强) 하였으므로 팔십(八十)의 수(壽)를 누리니 어찌 교양(敎養)없이 그러 하겠는가.   내 일찍이 공(公)을 뵈옵지 못하였고 그의 윤자(胤子)와 더불어 같이 사귀었는데 윤곤(潤坤)씨는 선규(先規)를 엄수(嚴守)하면서 여기에서 감농(監農)하고 여기에서 과업(課業=글가르침) 함을 보았노라.   재(齋)의 위쪽 백보(百步)에 공(公)의 유택(幽宅)이 있는데 당수(塘水)가 고요하고 요화(瑤花)가 만개(滿開)함은 공(公)의 금도(襟度)를 보는 것 같았고 명월(明月)이 은영(隱映)하고 송풍(松風)이 상발(爽發)함은 공(公)의 음성(音聲)을 듣는 것 같도다. 공(公)의 칠부정령(七分精靈) 이 완연(完然)히 이 재(齋)의 위에 계시어 후손(後孫)이 조상(祖上)에게 욕되게 아니함도 가(可)히 공경할만 하도다.   재(齋)가 옛적에는 마을의 동(東)쪽에 있더니 중년(中年)에 마을 서(西) 쪽에 이축(移築)하여 연당(蓮塘)이 가까워져서 등척(登陟=오르다)에 편리(便利)함을 취(取)하였는데 재(齋)에는 구편(舊扁)을 계(偈)하였다. 또 공(公)의 자저시(自著詩)와 기(記)를 계(偈)하니 그 글(文)이 질(質)하고 화(華)하지 아니하여 재(齋)와도 부합(副合)되고 또 그 소성(所性)의 만분(萬分)의 일(一)이라도 보는 것 같도다. 윤곤(潤坤)씨가 나에게 기문(記文)을 부탁(屬)하거늘 내 보고 들은바를 그대로 기(記)하니라.   광복(光復) 18년 임인(壬寅;1962) 중추지월(仲秋之月) 거창(居昌) 신호성(愼昊成) 기(記)

연당재기 착지종련위당이림지소오풍영이양정성가여량붕취우금기이소일시주이망세자기기상품격위하 여재왈시고지일민지류야여전한광무년간유연파처사금공이괴오지자부청운지지조년유낙낙 중사대부다지명자영귀가기족이대이관부세급유강칙내위연왈합귀호래전원장무의수권이퇴처 우재향지연평평가색지야재두류동남오육십리지외구예진양이누전금속사천지군평무수리중통 대도장강요기북좌우봉만주조공읍이중간일봉원만용취불편불의자연화봉야자차이서이복유일 봉선연초절림우강상자옥녀봉야양봉지상거불일리이대치쌍수자양봉이하이복각출연맥연위이 여겸지협물이곡심천청림목울창자행로시지초사와동즐비은견우송음죽영지간자즉금씨지세장 야공기환구서성소영역리정롱무복기재어소거지방범이실이일당서왈련당재자개기실야어시일 처기중범승선재숙지여일이영빈우일이과자손이낙여년이시세지득상영욕약태허지과부운소위 고상기사자근지의기이목지총명근력지강강이향팔십지수자기무소양이연재여증미획배공이득 여기윤자윤곤유상일등시재견윤곤씨각수선규감농어사과서어사이취재지상지백보이요연성구 자즉공지유택야당수지정경악만개여견공지금도야라월은영송뢰상발여문공지경해야칙공지칠 분정령완좌사재지상이후승지율수무첨위가경야기재구재장동중년이축장서여연당초간개취기 등척지편이잉게구편우유공지자저시여기기문질이불화여재상부즉차이역견기소성지만일의윤 곤씨속여위지기수서소득어이목자이귀지 광복십팔년임인중추지월거창신호성기 蓮塘齋記 鑿池種蓮爲堂而臨之嘯傲風詠頤養情性暇與良朋趣友琴棊以消日詩酒以忘世者其氣像品格爲何 如哉曰是古之逸民之流也歟前韓光武年間有蓮坡處士金公以魁悟之資負靑雲之志早年遊洛洛 中士大夫多知名者榮貴可跂足而待而觀夫世級愈降則乃喟然曰盍歸乎來田園將蕪矣遂卷而退處 于梓鄕之蓮坪坪稼穡地也在頭流東南五六十里之外舊隸晋陽而屢轉今屬泗川之郡平袤數里中通 大道長江遶其北左右峯巒周遭拱揖而中間一峯圓滿聳翠不偏不倚者蓮花峯也自此而西而復有一 峯嬋姸峭絶臨于江上者玉女峯也兩峰之相去不一里而對峙雙秀自兩峯而下而復各出軟脉蜒逶迤 如鉗之夾物而谷深泉淸林木鬱蒼自行路視之草舍瓦棟櫛比隱見于松陰竹影之間者卽金氏之世庄 也公旣還舊棲省掃塋域釐整壟畝復起齋於所居之榜凡二室而一堂署曰蓮塘齋者盖記實也於是日 處其中凡承先齋宿之餘一以迎賓友一以課子孫以樂餘年而視世之得喪榮辱若太虛之過浮雲所謂 高尙其事者近之矣其耳目之聰明筋力之康强而享八十之壽者豈無所養而然哉余曾未獲拜公而得 與其胤子潤坤遊甞一登是齋見潤坤氏恪守先規監農於斯課書於斯而就齋之上之百步而窈然成區 者卽公之幽宅也塘水止靜瓊萼滿開如見公之襟度也蘿月隱映松籟爽發如聞公之警欬也則公之七 分精靈完左斯齋之上而後承之聿修無忝爲可敬也己齋舊在庄東中年移築庄西與蓮塘稍間盖取其 登陟之便而仍揭舊扁又有公之自著詩與記其文質而不華與齋相副卽此而亦見其所性之萬一矣潤 坤氏屬余爲之記遂書所得於耳目者以歸之 光復十八年壬寅仲秋之月居昌愼昊晟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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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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