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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11. 송산정기(松山亭記)   초모(草茅)의 선비(士)로서 재지(才智)있어 회우(會遇)의 자리에 즈음하여 혹 공명(功名)사업(事業)에 나아가 세상에 표견(表見)됨이 중인(衆人)이 원모(願慕)하는 바이다. 그러나 소위(所謂)공명(功名)과 사업(事業)은 길이 달라 정도(正道)를 벗어나지 않고 입양(立揚)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으면 진실로 아름답고 그렇지 않으면 성리(聲利)에 빠질 (溺) 사람이다. 말로(末路)에 가서 그 자실(自失)의 회(悔)를 이기지 못한자(者) 허다하였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명교(名敎)는 안으로 스스로 즐거움이 있다 하니 대개 분(分)을 편안히 하고 어리석음을 지켜 떳떳한 윤(倫)을 돈상(敦尙)하여 안으로는 행(行)함을 닦고 (修)밖으로는 은택(恩澤)이 사람에게 급(及)하여 나의 본분(本分)의 직(職)을 다하더라.   아울러 말하면 지업(志業)을 잃(墜)은 것은 이 또한 중인(衆人)의 짓으로 얻기 어렵다. 곤명(昆明)의 북쪽 송비산(松飛山) 아래 마을이 있으니 송림(松林)이다 송림(松林)은 강씨(姜氏)의 세거(世居)이고 유업(儒業)을 전(傳)하던 곳이었다. 여기에 처사(處士)가 있었으니 휘(諱)는 용섭(庸變)이요 자중(子中)은 그 자(字)이다. 은거(隱居)하고 의(義)를 행(行)하며 화(和)하고 순(醇)한 옛군자(君子) 인(人)이었다.   처음에 향(鄕)선생에게서 수학(受學)하여 경전(經典)의 대의(大義)를 통(通)하고 또 병세(並世)의 명사(名士)를 사귀어(交) 자익(資益)한바 많았으며 후진(後進)을 교수(敎授)하니 원근(遠近)이 부겁(負笈)하여 따르는 사람이 운집(雲集)하여 재사(齋舍)가 좁아 수용(收容)하지 못하였다. 문생(門生)과 여러벗들은 계(契)를 꾸미(修)더니 몰(沒) 한 후 (後) 유문(遺文)을 인출(印出)하여 세상에 반포(頒布)하고 또 여자(餘資)를 축(蓄)하여 정(亭)을 소거(所居)의 좌(左)에 세우고 자호(自號)의 송산(松山)으로 편미(扁媚)하니 기해(己亥)년 가을의 일이다. 처사(處士)같은 이는 가위 명교중(名敎中)의 한분이며 공명(功名) 사업(事業)의 이룸을 다했다 하겠다.   사손(嗣孫) 정현(正鉉)이 그의 삼종숙(三從叔) 재하(在夏)군과 같이와서 나에게 기실(記實)의 글을 청(請)하거늘 내가 그를 보고 용연(聳然)히 달리하여 말하기를 처사(處士)의 유풍(遺風)이 후세(後世)에 전(傳)하고 이 정(亭)이 평일(平日) 연식(燕息)의 곳에 방불하여 다를바 없으니 제군(諸君)이 정성을 다하여 정(亭)을 사즙(嗣葺)하여 불후(不朽)되게 하여 송(松)이 무(茂)함과 같이 유구(悠久)할지어다. 아울러 앞의 열(列)한바 세(世)의 상론(尙論) 군자(君子) 보면 그 또한 나의 말로서 무(誣)하지 아니함이 되리라.   신축(辛丑 ; 1961년) 양복지월한(陽復之月瀚) 영가(永嘉) 군도용(權道溶) 서(書)

송 산 정 기 초모지사초유재서이우회처제혹능취공명사업이자표견어세차고중인지소기모야연소위공명사 업자소출이도취정궤이불배호입양지훈칙성미의불연성리지닉인야이말로유불승기자실지회자 비비언고인왈명교내자유낙지개안분수졸돈상이윤내이행수우기외이택급우인이진오본분지직 병유소술추지업차역중인소기모이불가필득야곤명지북송비산하유촌왈송림강씨세거이이유소 전유처사휘용변자중기자은거행의옹연위순고군자초수학어향선생통경전대의우교병세제명류 다소자익교수후진원근추내급이종자분집재사기불능용문생급제우위상수계몰후유문부인행우 세우축여자작정우소거지좌인이기소자호송산자서미세기해추야희약처사자가위향진명교중지 공명사업자교사손정현여기삼종숙재하군래색기실지문여람기용연이지왈처사지유풍전어후이 사정자황연여평일연식지소무이의제군지권권어여종야칙정지사즙이불후여송지무이동기유구 의병전소열세지상론군자견지기역이여언위불무야 신축양복지월한 영가 권 도 용 서 松 山 亭 記 草茅之士稍有才諝而遇會處際或能就功名事業以自表見於世此固衆人之所蘄慕也然所謂功名事 業者所出異塗趣正軌而不偝乎立揚之訓則誠美矣不然聲利之溺人也易末路有不勝其自失之悔者 比比焉古人曰名敎內自有樂地盖安分守拙敦尙彛倫內而行修于己外而澤及于人以盡吾本分之職 並有所述墜志業此亦衆人所蘄慕而不可必得也昆明之北松蜚山下有村曰松林姜氏世居而以儒素 傳有處士諱庸變子中其字隱居行義雍然爲醇古君子初受學於鄕先生通經典大義又交並世諸名流 多所資益敎授後進遠近推乃笈而從者坌集齋舍幾不能容門生及諸友爲上修契沒後遺文付印行于 世又蓄餘貲作亭于所居之左因以其所自號松山者暑楣歲己亥秋也噫若處士者可謂享盡名敎中之 功名事業者校嗣孫正鉉與其三從叔在夏君來索記實之文余覽己聳然異之曰處士之遺風傳於後而 斯亭者怳然與平日燕息之所無異宜諸君之惓惓於如終也則亭之嗣葺而不朽如松之茂而同其悠久 矣並前所列世之尙論君子見之其亦以余言爲不誣也 辛丑陽復之月瀚 永嘉 權 道 溶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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