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명면지



곤명면지

10. 성추재기(省楸齋記)   곤양군(昆陽郡) 북십리(北十里)의 지점에 무군산(舞軍山)이 그 뒤를 진압(鎭壓)하여 산이 나직하게 둘러있고 봉계천(鳳溪川) 이 그 앞을 옷섭처럼 물 구비를 고리처럼 하고 골짜기 깊숙하여 들판이 광활(廣豁)한 곳이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세거지(世居地)이니 말하기를 추천(楸川)이라. 이씨(李氏)는 익안대군(諱) 방의(芳毅) 후손(後孫)인데 대대(代代)로 고관(高官)이 줄을 이어 문운 (門運)이 좋더니 중세(中世)에 난(亂)을 만나 피난(避難)하여 남하(南下)하였는데 휘(諱) 성기(聖己)가 비로소 이곳에 전거(奠居)하여 농사(農事)지어 생활(生活)을 영위 (營爲) 함이 맞당한지라 근검(勤儉)하고 의(義)를 행하여 사람의 앎(知)을 구(求)하지 아니하고 능(能)히 그 가정(家庭)을 다스리어 그 생업(生業)이 점점 나아 이모(詒謨)의 자손(子孫)에 미치니 영원(永遠)토록 쇠(衰)하지 아니 하니라.

  5세손(世孫) 남재(南齋) 휘(諱) 형래(馨來)와 옥와(玉窩) 덕래(德來)는 도(道) 있는이를 친(親)하여 학문(學文)이 넉넉하고 행실(行實)이 닦아져 사우(士友) 사이에 이름이 돋보히더라. 집에 있을때 선사(先事)에 정성을 다 하였다. 휘(諱) 기순(棋純)과 상순(相純)은 서로 뜻과 힘을 모아 선영(先塋)을 비식(賁飾)하고 또 선조(先祖) 태천현감(泰川縣監)공의 단(壇)을 설(設)하여 거기에 제(祭)를 올리었다. 해마다 춘로(春露) 추상(秋霜)에 출척(怵惕) 처창(悽愴) (슬프고 근심한 마음)의 마음이 없지 아니 하였고 재실(齋室)을 이루지 못함을 안타까이여겨 오더니 정미년(丁未 ; 1967) 겨울에 옥와(玉窩)의 아우 겸래(謙來)가 그 뜻을 이어 온 친척과 상의(相議)하여 계획을 확정 터(基地)는 마을뒤 선영(先塋)아래에 정하고 용희(溶喜)와 성희(成喜)로 공사를 맡게하여 그 다음해 무신 (戊申 1968) 에 완공하니 재(齋) 삼칸이라 양헌(凉軒)과 욱실(燠室)이 격에 맞게 갖추어지니 성묘(省墓)길이 상균(相均)하여 성묘(省墓)에 편리(便利)하니라. 성추(省楸)라 편(扁)하니 재호(齋號)가 동명(洞名)과 상합(相合)하였도다.이씨(李氏)의 조선(祖先)이 미리 알고 그 동네의 이름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의 벗 필구(弼九)그의 족제(族弟) 성구(成九)와 같이 와서 현판(懸板)글을 청(請)하며 말하기를 우리 선조(先祖)가 못다한 일을 이제 겨우 이루워 재계(齋戒)하고 제사(祭祀)를 올리게 되었음에 종족(宗族)이 모여 돈목(敦睦)을 강(講)하며 자질(子姪)에게 예의(禮儀)를 가르쳐 알게하겠네. 자네 나를 위해 한 말씀 없을까 하기에 아름답도다.   옛 견씨(甄氏)의 사정(思亭)의 의(義)와 위씨(韋氏)의 화수지회(花樹之會)와 같도다 슬프다 예속(禮俗)이 폐괴(廢壞)하고 윤강(倫綱)이 패절(敗絶)하여 고도(古道)를 쓸데없다 하여 선조(先祖)의 제사(祭祀)를 아니 하는자 흔하거늘 가(可)히 재명분판(齋明芬苾)의 의(義)를 논(論)할 것인가 그대는 능히 이 재당(齋堂)을 이루웠으니 원(願)하건대 재중(齋中)의 제군자(諸君子)는 여재(如在)의 성(誠)을 이루워 그 덕(德)을 닦아 부(父)는 계(戒)하고 자(子)는 수(受)하며 형(兄)은 욱(勗)하고 제(弟)는 순(順)하며 소생(所生)에 첨(忝)함이 없어 안으로는 선조(先祖)의 양규(良規)를 전(傳)하고 밖으로 선왕(先王)의 유법(遺法)에 따라 일방(一方)의 첨령(瞻聆)에 긍식(矜式)할바 있으니 세교(世教)의 쇠퇴(衰退)함이 쉬지 않고 계속되기를 적어 성추재(省楸齋)의 기문(記文)으로 삼는다.   경술(庚戌 ; 1970) 춘분절(春分節)   울산(蔚山) 김 기 주( 金 璣 柱)

성 추 재 기 곤양치북십리지강무군전기후이리이봉계금기전이만환곡유평창자즉전주이씨세거지이리왈추 천야이씨자익안대군휘방의지후세세잠영상승문보벌열중세조란남하이지휘성기시전거우차위 기의어가색이자생야이근검행의불구인지이극세기가고기생업점진이이모지급어자손자영유미 애기오세손남재휘형래옥와휘덕래획친유도학우행수이명저사우지간거가탄성선사여휘기순상 순합모출역분식선영우기선조태천현감공설단치제어기상매춘로추상비무휴척처창지심이미가 구치제명지소위한세정미동옥와지제겸래씨내승기지합족상량이위경기칙상지어소거촌후묘하 사용희성희위동역이익년무신공고흘재범사가량헌욱실제도구비루세지묘고첨월첨도리상균이 편리성소고안용성추칙재지호여동명상부합의기비이씨조선예지이명기동여일오우필구여기족 제성구내청현미지문왈차오선세미황지거금재구성사가이치제계공자성사가이취종족강돈목사가 이교자질지예의자위아무일언호여왈미재석견씨사정지의위가화수지회고차례야희자예속폐괴 윤강두절위고도지무용불제선자비비언칙황가론어제명분필지의호군능금기구긍당의원재중제군 자치기여재지성율수궐덕부계자수형욱제순무첨소생이내이전선조지양규외이준선왕지유법사 일방첨령유소긍식칙세교쇠이장가복이휴명의怸차기어이위성추재기 세경술 춘분절 울산 김 기 주 기 省 楸 齋 記 昆陽治北十里之彊舞軍殿其後而峛崺鳳溪襟其前而灣環谷幽坪敞者卽全州李氏世居地而里曰楸 川也李氏自益安大君諱芳毅之後世世簪纓相承門步閥閱中世遭亂南下而至諱聖己始奠居于此爲 其宜於稼穡而資生也以勤儉行義不求人知而克世其家故其生業漸進而詒謨之及於子孫者永有未 艾其五世孫南齋諱馨來玉窩諱德來獲親有道學優行修而名箸士友之間居家殫誠先事與諱棋純相 純合謀出力賁飾先塋又其先祖泰川縣監公設壇致祭於其上每春露秋霜非無休惕悽愴之心而未暇 構置齊明之所爲恨歲丁未冬玉窩之弟謙來氏乃承其志闔族商量以爲經紀則相址於所居村後墓下 使溶喜成喜爲董役而翌年戊申功告訖齋凡四架凉軒燠室制度具備累世之墓顧瞻越瞻道里相均而 便利省掃故顔用省楸則齋之號與洞名相符合矣豈非李氏祖先豫知而名其洞歟日吾友弼九與其族 弟成九來請懸楣之文曰此吾先世未遑之擧今纔構成斯可以致齊戒供粢盛斯可以聚宗族講敦睦斯可 以敎子姪知禮義子爲我無一言乎余曰美哉昔甄氏思亭之義韋家花樹之會固此例也噫自禮俗廢壞 倫綱斁絶謂古道之無用不祭先者比比焉則況可論於齊明芬苾之義乎君能今旣搆肯堂矣願齋中諸君 子致其如在之誠聿修厥德父戒子受兄勗弟順無忝所生而內以傳先祖之良規外以遵先王之遺法使 一方瞻聆有所矜式則世敎衰弛將可復而休明矣怸次其語以爲省楸齋記 歲庚戌 春分節 蔚山 金 璣 柱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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