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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9.성산재기(城山齋記)   사천군(泗川郡) 북쪽 제방산(諸方山) 아래 재실(齋室)을 이루고 성산(城山)이라 현판(懸板)하니 진양강씨(晋陽姜氏) 이조정랑(史曹正郞) 휘(諱) 승중(承重) 호(號) 눌곡공(訥谷公)의 시제(時祭)를 드리는 재실(齋室)이다.   그의 묘(墓)가 진주(晋州)의 남쪽 정촌면(井村面) 승강촌(昇岡村) 자좌(子坐)에 있더니 이제 그 영역(瑩域)을 잃었으므로 단(壇)을 모아 제(祭)를 지내온지 오래이다.   어느날 종족(宗族)들이 결의(決議)하여 재산(財産)을 모우고 공인(工人)을 모집하여 사간(四間)의 재사(齋舍)를 영건(營建)하니 화려(華麗)하지 않고 검소(儉素)하다. 드디어 사모(思慕)의 뜻을 오래도록 간직 하기 위하여 단(壇)을 모아 제사(祭祀) 드리던 것을 재사(齋舍)로 바꾸니 하늘에 계시는 혼령(魂靈)이 반드시 명막(冥莫)한 곳에서 기뻐 하실 것이다.   대범 선대(先代)를 추모(追慕)하여 그 정성(精誠)을 다하면 인륜(人倫)에 후(厚)함이니 이미 나의 정성(精誠)을 다한 즉 남도 또한 따라 정성(精誠)을 그의 선대(先代)에 다할 것이니, 이와 같이 다 한다면 풍속(風俗)이 점점(漸漸) 바르게(正)되어 질 것이다. 풍속(風俗)이 점점(漸漸) 바르게 나아 간다면 민덕(民德)이 어찌 후(厚)하지 아니하리오 그러나 이는 후손(後孫)의 성(誠)과 불성(不誠) 여하(如何)에 있을 것이니라 우인(友人) 선희(善熙)와 재준(在俊)군이 부노(父老)의 명(命)으로 나한테 와서 기문(記文)을 청(請)하거늘 내 불문(不文)으로 사양(辞讓)하였으나 어찌 하지 못하고 그 시말(始末)을 기록(記錄)하여서 자손(子孫)의 지성(至誠)을 표시(表示)하려고 이에 기(記)하게 이르렀다.   서기 1987. 春 진양(晋陽) 정 중 규 (鄭 中 圭) 기(記)

성산재기 재어사천치북제방산하이이성산편지자시진양강씨이조정즉휘승중호눌곡공봉세일제지분암야 기묘재진주남정촌면승강촌자좌지원이금실기영역이위단이사지구의일합족결의구재모공영건 사영병사불화이박소기검야수이우갱장지모이인이체설단위세일전지실재천지령역필열예어명 명지중의부추원이진기성칙어인륜후의기진기지성칙인역화이진성어기선여시칙풍속점추우정의풍속점추 우정칙민덕안득불귀우후호연차재후손지성불성여하의우인선희재준군이부노지명래청기어여여불 문고사불획이기기시말용표잔손알알지성시위기 진 양 정 중 규 기 城山齋記 齋於泗川治北諸房山下而以城山扁之者是晋陽姜氏吏曺正卽諱承重號訥谷公奉歲一祭之憤庵也 其墓在晋州南井村面昇岡村子坐之原而今失其塋域而爲壇以祀之久矣日合族決議鳩財募工營建 四楹丙舍不華而樸昭其儉也遂以寓羹墻之慕而因以替設壇爲歲一奠之室在天之靈亦必悅豫於冥 冥之中矣夫追遠而盡其誠則於人倫厚矣旣盡己之誠則人亦化而盡誠於其先如是則風俗漸趨于正矣風俗漸趨 于正則民德安得不歸于厚乎然此在後孫之誠不誠如何矣友人善熙在俊君以父老之命來請記於余余不 文固辭不獲以記其始末庸表孱孫戞戞之誠是爲記 晋 陽 鄭 中 圭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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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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