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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8. 삼신제중건기(三新齋重健記)   정(鄭)씨의 관(貫)은 진양(晋陽)인데 팔파(八派)가 있다 .고려(高麗) 통례문(通禮門) 지후(祗後)인 휘(諱) 선지(侁之)의 일가(族)가 그 중의 한파(一派)이다. 10대로 내려와서 강계부사(江界府使) 휘(諱) 이례(以禮)의 손자(孫)인 훈련원(訓練院) 첨정공(僉正公) 휘(諱) 은주(銀柱)가 진성(晋城) 백암(白岩)에서 곤양(昆陽) 삼봉산(三峯山) 아래에 터전을 정(定)하여 비로서 머무름이 여러대 였다.   그러나 제단(祭壇)을 설치(設置)함은 무덤(墓)을 높혀 나아감을 취(取)함이라 이 단(壇)은 부사공(府使公)과 그 아들 직장동정(直長同正) 공 휘(諱) 현손(玹孫) 두 세대(墓)의 실묘(墓)로 설치하였다.   묘(墓)는 본시 첨정공(僉正公)이하 5세대(世代)를 함께 한곳에 장사(墓)하고 숭상(崇尙)하여 일찍 그 산 아래에 재실(齋室)을 지어 신흥(新興)의 지명(地名)인 신(新)자와 산 이름인 삼봉(三峯)의 삼(三)자를 취(取)하여 삼신(三神)으로 하였다.   중간(中間)에 화재(火災)로 소실되여 여러해 지나는 동안 폐허(廢墟) 가 되었었다.

  후손 윤숙(胤淑)과 익균(益均)이 여러 일가(族)와 상의(相議)하여 재전(財錢)을 모우고 이를 기루어(殖) 기해(己亥 1959년) 봄에 송현(松峴)에다 땅을 가려서 사영(四楹) 삼간(三間)으로 재실(齋室)을 중건(重建)하였는데 재목(材木)과 제도(制度)가 전(前)에 비(比)하면 조금은 웅장(雄壯)하여 일가(族)끼리 모여 공경(恭敬)히 재계(齋戒)함에 가(可)히 넉넉하였다.   그 뒷산의 주렁과 금오산(金鰲山)과 옥녀봉(玉女峰)등 여러 산(山)이 연(連)이어 줄을 지어서서 아름다움을 받쳐 왔고 금호강(金湖江)의 한 물줄기는 서(西)쪽으로 달려 정결한 비단같고 맑은 생기(生氣)가 넉넉(足)하여 마치 지령(地靈)됨이 사람이 살매 행복(幸福)하고 번성(繁盛)할 것이다.   재실(齋室)의 이름은 예전(前)을 좇아 삼신(三新)으로 하였으나 다만 실상(實相)을 기록(記錄)한 글이 없어 익균(益均)이 나한테 와서 청(請) 하거늘 내가 살펴본 즉 조선(祖先)과 자손(子孫)간의 세대(世代)가 멀고(遠) 멀어 사당(廟堂)이 헤여진(毁損) 즉 오직 묘제(墓祭)이니 이는 그 성의(誠意)를 펼(伸)뿐이라 묘제(墓祭)를 하고저 한즉 또한 재계(齋戒)를 밝게하여 심신(心身)의 닦음 (修)을 갖춤이 없지 아니한바이니 이는 효자(孝子)와 자손(慈孫)이 재실(齋室)을 이루는 소치(所致)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일즉 인효(仁孝)를 바탕으로 정사(政事)를 한 징험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내가 오늘날 늘 두렵게 느낌은 이교(異敎)가 크게 번성하여 사람들이 윤강(倫綱)이 날로 해이 하여서 이런일을 생각함이 없고 전(前)에 있던 집을 수리(修理)또는 증축(增築)도 미처 마음을 내지 못함에 신축(新築)은 더욱 기다릴바 아니니라.   그 무슨 연고일까. 보고 듣는 것을 헛되이 여기고 아름다움만 숭상함이 없지 아니하고 명분(名分)과 실상이 서로 부합(符合)되지 아니할 뿐이다.   전(傳)하는 말에 일(事)을 이루지 못함은 사람의 탓이오 일을 이루면 귀신(鬼)탓이라 함은 대개 성의(誠意)를 재세(在世) 부모(父母)에만 다한 연후에야 먼 조선(祖先)에 미침(追)이라 오직 정씨 (鄭氏) 여러 군자(君子)께서는 그릇된 말이나 해괴한 부르짖음의 선전(宣傳) 유혹(誘惑)에 물들지 아니하고 오직 머리숙여 우리 성현(聖賢)의 가르침에 좇아 효제(孝悌)와 돈목(敦睦)을 돈독케하며 윤강(倫綱)을 바르게 세워 그 제기(籩豆)를 정결히 정돈하며 오르고 내려오며 조상(祖上)의 산소(山所)에 정성껏 제사(祭祀)를 드리니 반드시 무한(無限) 토록 성대한 성실함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아니한즉 비록 묘제(墓祭)가 있으나 조촐(粗率)하여 허례(虛禮)를 면(免)치 못하여 그 어찌 영원토록 이어가며 초동(草童)과 나무꾼의 짖밟힘되어 바람에 파(破)하고 비(雨)가 새(漏)는 것을 보존(保存)키 어려울 것이니 서로 더불어 경계하며 힘쓰기를 어찌 아니할까부냐.   이 재실(齋室)을 지음에 있어 후손 한균(漢均)과 종선(鍾宣)이 처음부터 끝까지 힘씀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기 위하여 글로서 또한 새겨둔다.   기해(己亥 :1959) 12월(季冬) 화산(花山) 권창현(權昌鉉)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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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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