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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3. 덕천재기(德川齋記)   곤양읍(昆陽邑)이 교령(嶠嶺)의 남방(南方)에 있어 사천군(泗川郡)에 속(屬)하니라. 곤명리(昆明里)는 일선김씨(一善金氏)의 세거(世居)이다. 세거(世居)인 고(故) 세장(世葬) 분영(墳塋)이 많이 소재하고 있다. 그곳에 재소(齋所)를 이루어 세사(歲事)의 구숙(具宿)에 공(供)하느니라.   김(金)씨는 강호(江湖) 문강공(文康公)의 후예(後裔)이다. 문강공(文康公)의 10세손(世孫) 휘(諱) 천징(天澄) 천일(天溢) 형제(兄弟)가 둔(遯)으로써 와재(窩齋)를 서(署) 하니 대개 그 시대(時代)에 어기여 잠광회적(潛(光(晦迹)을 하고자 함이니라 거창(居昌)으로부터 남하(南下)하여 세동(細洞)에 살더니 뒤에 다시 곤명(昆明)에 이전(移奠)하니 세동(細(洞)과 가깝고 이제 이 재(齋)를 덕천이라 편함은 덕천(德川)의 하류(下流)임을 취(取)한 것이다.

  천도(天道)를 마음에 얻은 자(者)를 덕(德)이라 함이니 덕(德)의 덕(德)됨은 스스로 원(源)이 있어 흐르는 것은 천(川)이니 맥락(脈絡)이 분명(分明)하여 쉬지 않고 강해(江海)에 달(達)하니 주부자(朱夫子)의 관란사(觀瀾詞)에는 강의 흐름이 쉬지 않는 것을 보니(觀川流之不息) 오도체(五道體)의 무궁(無窮)이라 하니 차탄(嗟嘆)함이 깊도다 강호(江湖)선생의 직학(直學)의 심법(心法)은 위로, 포은(圃隱)과 야은(冶隱)의 전(傳)에 접(接)하고 아래로 점필제(佔畢齋) 일두(一蠹) 한훤당(寒暄堂) 정암(靜菴)의 서(緖)를 계(啓)하니 거창(居昌)의 일원정(一源亭)을 보아 가징(可徵)할 것이다. 그 후손(後孫)의 일우(一隅)에 유락(流落)한 자(者) 능(能)히 추선(追先)을 잊지 아니하고 재(齋)를 하여 소자래(所自來)를 밝히고 편(扁)을 게(揭)하여 원류(源流)의 의(義)를 붙(寓)히여 승강출입(升降出入)이 이에 있음을 뒤돌아 보고 천수연어(薦羞燕語) 이에 감념(感念)되면 비록 도체(道體)의 무궁(無窮)에는 감(敢)히 족(足)하다고 말하지 않으나 그 선덕(先德)을 봉승(奉承)하고 후손(後孫)에 수유(垂裕)의 방(方)에는 도움이 없지 않을것이니 가(可)히 공경(恭敬)하고 부지런하지 아니하리오 재(齋)의 시작(始作)은 갑인(甲寅) 춘(春)이다. 그 족인(族人) 병수(丙秀)가 상량(上梁)을 송(頌)하고 이어서 또 후손 병선(柄璿)과 같이 와서 나에게 기문(記文)을 청(請)하거늘 사양(辞讓)치 아니하고 그 명의(名儀)를 설명하고 쓰기에 이르렀다 을묘춘(乙卯春;1975)에 의성(義城) 김황(金榥)는 기록하다.

  덕천재기   곤양위읍재교령남추속사천군왈곤명리자일선김씨세거야이기세거고역다세장분영즉기지이위   지재소이공세사지구숙세김씨기선강호문강공지예문강공지십세손유휘천징천일형제구이둔서   기와재개기유위어세이사욕잠광회적야시자거창남하복세동심후복이존우차곤명지여세동가상   망야이금차재지편이덕천취기덕천하류야천도지득어심자위지덕지위덕자유기원원지이유시지   위천맥락분명이왕지불식기경달우강해주자관란사유운관천류지불식오도체지무궁기차탄야심   의월약강호선생직학지심법상접포치지전하계필두훤정지서관호거창지유일원정이가징야내기   후예지유락일우자유능불망호추선기위지재이소기소자래잉게지편우제원류지의승강출입고첨   재자천수연어감념우시칙수어도체지무궁미감거언기재봉승선덕수유후곤지방요적불위무조가   불경재가불면재재지시작재徃세갑인지춘기족인병수위송거려계우동기후손병선래청여기이욱   지심근불가사칙위설기명의이부지   을묘춘 의성 김황기   德 川 齋 記   昆陽爲邑在嶠嶺南陬屬泗川郡曰昆眀里者一善金氏世居也以其世居故亦多世葬墳塋卽其地而爲   之齋所而供歲事之具宿世金氏其先江湖文康公之裔文康公之十世孫有諱天澄天溢兄弟俱以遯暑   其窩齋蓋其有違於世而思欲潛光晦迹也始自居昌南下卜細洞尋後復移尊于此昆明之與細洞可相   望也而今此齋之扁以德川取其德川下流也天道之得於心者謂之德之爲德自有其源源地而流是之   謂川脈絡分明而往之不息期竟達于江海朱子觀瀾詞有云觀川流之不息吾道軆之無窮其嗟嘆也深   矣粵若江湖先生直學之心法上接圃治之傳下啓畢蠹暄靜之緖觀乎居昌之有一源亭而可徵也迺其   後裔之流落一隅者猶能不忘乎追先旣爲之齋以昭其所自來仍揭之扁寓諸源流之義升降出入顧瞻   在玆薦羞燕語感念于是則雖於道軆之無窮未敢遽言其在奉承先德垂裕後昆之方要赤不爲無助可   不敬哉可不勉哉齋之始作在徃歲甲寅之春其族人丙秀爲頌擧攦繼又同其後孫柄璿來淸余記而勗   之甚勤不可辭則爲說其名義以副之   乙卯春 義城 金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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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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