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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22. 본촌리(本村里)   곤명면(昆明面)의 동북단(東北端)에 위치하며 “본땀”과 양월(陽月)의 2개 마을로 구성되고 소재지에서 8km 거리에 있다.   덕천강(德川江)을 경계하여 북으로 진양군 수곡면(晋陽郡水谷面)과 접하고 있으며 고려태조 23년에 곤명(昆明)이라 호칭되어 지금의 수곡면 광명촌(光明村) 일대가 원당(願堂)이라 하고 이 일대가 곤명의 일부였다고 한다.   고려사지리지(高麗史地理志),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등 문헌(文獻)에 곤명현(昆明縣)의 설치 기록이 있고 지금도 “돌 호박”이라는 주초석(柱礎石)과 미륵석불(彌勒石佛), 그리고 옥터(獄地) 등 유지(遺地)가 이 곳에 그대로 전한다.   전설에는 미륵석불(彌勒石佛)들이 동산 모퉁이와 불당(佛堂) 골 앞에 각기 수호신(守護神)으로 있어 현리(縣吏)들이 삭망기도(朔望祈禱)를 빠짐없이 하였다 하며 그후 폐현(廢縣)이 되자 서로가 수호(守護)를 못다한 책임(責任)을 전가(轉嫁)하다가 두 석상(石像)이 싸워 하나는 어깨가 떨어지고 하나는 목이 부러졌다 하며 그 동강난 석불(石佛)이 현존하고 있다.   마을뒤 “서재골”과 상사(想思) 바위는 전설이 얽힌곳이고 당산봉(堂上峰)은 세세년년(歲歲年年) 동민(洞民)이 산제(山祭)를 지내던 곳이다.   고려때 지어진 대흥사(大興寺)는 희미한 유적(遺跡)뿐이고 옆 골짜기에 대흥암자(大興庵子)가 있으며 월아봉(月蛾峰)은 운중반월(雲中半月)이라는 명지(名地)이다.   구한말(舊韓末) 때 지금의 곤명면(昆明面)이 4개면(個面)으로 있을적에 곤명면의 소재지었고 1914년 4개면이 곤명면(昆明面)으로 통합됨과 동시에 면사무소(面事務所)가 송림(松林)으로 옮겨졌는데 본시 현면(縣面)의 소재지(所在地)였다는 뜻에서 본촌(本村)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양월(陽月)은 양달 마을이었던 것이 한자(漢字)로 표기(表記)로 된 것이고 일명(一名) “장자터”라 함은 부자(富者)가 살았다는 뜻에서 생긴 동명(洞名)이다.   동쪽 강변에 큰 느티나무가 강(江) 바닥에 묻혀 있는데 몇 백년은 족(足)히 되나 아직 침향(沈香)이 아니되어 그대로 묻어두고 있으니 침향(沈香)은 천년(千年)이 넘어야 고가(高價)의 주사(朱砂)가 된다 한다.   1970년까지 수곡(水谷)과의 교통은 덕천강(德川江)의 도선(渡船)이었다. 일천년을 두고 애환(哀歡)을 실어 나르던 유서(由緖) 깊은 나룻배가 덕천교(德川橋)의 개통으로 시정(詩情)과 풍류(風流) 담긴 정경(情景)은 찾을길 없고 옛나룻터 위의 깎은 듯한 높은 벼랑과 깊이를 모르는 검 푸른 쏘(沼)는 접근(接近)을 두려워 하는 신비(神秘)함을 간직하고 있다.   입촌(入村)의 씨족(氏族) 순서는 윤(尹), 신(愼), 류(柳), 조(曺), 김(金)씨 등이나 지금은 선산김씨(善山金氏)가 대종(大宗)을 이루고 조씨(曺氏) 수호(數戶)가 전통(傳統)을 이을 뿐이다.   특산물(特産物)로는 소채(蔬菜) 청과(靑果)가 이름난 물품(物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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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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