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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21. 신기리(新基里)   “새터땀”과 “골안땀”을 묶은것이 신기리(新基里)이다.   1938년 곡내(谷內) 신기(新基)의 양부락(兩部落)으로 있다가 1956년 통합(統合)되어 신기리(新基里)가 되었다.   골안(谷內)땀은 신라시대(新羅時代)부터 이미 마을이 있어 소씨(蘇氏)가 살았다 하며 신라(新羅)때의 고분(古墳)으로 보이는 큰 무덤 2기(基)는 지금도 소씨(蘇氏) 무덤이라 불리어 지며 그 옛날 부호(富豪)가 살았던 터를 지금도 열두대문터(十二大門)터라 말하고 있다.   배 나무재에 “서낭당”이 있어 8.15해방 이전까지는 서낭당제(城隍堂祭)를 모셨으나 지금은 조산(造山)의 흔적(痕跡)만 남아 있다.   들 가운데 경충당(敬忠堂)이란 서당(書堂)이 있어 완사(浣紗) 주위(周圍)의 많은 후학(後學)을 가르쳤다 하며 이 일대(一帶)를 “서재(書齋)들”이라 불리어지고 있다.   사장(射場)터는 곡내천(谷內川)과 덕천강(德川江)의 합수지점(合水地点)에 있었으며 무과(武科) 응시자(應試者)의 궁술연마장(弓術練磨場)이 였으나 지금은 전답(田畓)으로 화(化)해 흔적(痕跡)도 없다.   세종(世宗)때 설치(設置)된 완사역원(浣沙驛院)의 장소(場所)가 불분명(不分明)하나 신기(新基)의 “공터”라고 추측(推測)되기도 한다.   1960년 이 마을에서 사설(私設) 수력발전(水力發電)을 하여 농촌전화사업(農村電化事業) 이전에는 완사(浣紗) 지역의 가정에 전등불을 주어 종지불을 없애는데 한몫 하였다.   1967년 남강(南江)땜으로 수곡방면(水谷方面)의 이설도로(移設道路)가 신기(新基), 본촌(本村)으로 연결하게 되었으며 완사지역 상수도(上水道) 배수장(配水場)이 이곳에 설치되어 있다.   골안땀(谷內) 입구(入口)의 느티나무는 수령(樹齡)이 400년으로 둘레가 5m이며 이 나무밑은 골짜기로부터 내리치는 바람이 여름에도 오한증(惡寒症)이 들 정도의 시원함을 줌으로 인근(隣近) 촌로(村老)들은 한 더위에는 언제나 이곳에 모여 들었고 또한 목신제(木神祭)가 연례(年例)로 치루어 졌으나 지금은 굿 할때만 제(祭)를 지내고 있다.   비닐 하우스로 청과단지(靑果團地)를 조성(造成)하여 속성공동출하(速成共同出荷)와 품질개량(品質改良)에 역점(力点)을 둔 작목반(作目班) 조직이 있어 년간 1억원의 소득(所得)을 올리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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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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