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명면지



곤명면지

19. 정곡리(正谷里)   덕천강(德川江)을 사이에 두고 금성리(金城里)와 마주보고 있으며 1956년 정곡리(正谷里)가 3개부락으로 분리(分離)하면서 “물갓땀”, “모랫동”, “구장터”로 형성(形成)된 리동(里洞)이다.   신작로(新作路)가 나기 이전(以前) 구(舊)장터 길목은 진주(晋州)로 통(通)하는 보행(步行) 대로(大路)였으니 보부상(褓負商)의 집결지(集結地)로 객주(客主)도 있고하여 항시(恒時) 사람이 붐벼 물물(物物)의 교환(交換) 매매(賣買)의 시장화(市場化)가 되었던 곳이다.   “모랫등”은 상고(上古)때 덕천강(德川江)이 이곳으로 흘렀다 하며 수류(水流)의 변천(變遷)으로 이곳에 모래가 쌓여 마을이 생김으로서 유래(由來) 되었다고 하나 일설(一說)은 이조(李朝)때 완사역(浣沙驛)의 관마(官馬)의 둔소(屯所)라 하여 마래등(馬來嶝)이라 한데서 나왔다고도 한다.   6.25때 적(敵)의 선발대(先發隊)가 완사(浣紗)에 집결(集結)하자 도로변(道路邊) 20여호(餘戶)가 폭격(爆擊)으로 소실(燒失)된 바 있다.   1962년 완사시장(浣紗市場)이 현재(現在)의 우시장(牛市場)으로 옮겨 부락(部落)의 전성(全盛)을 이루다가 1968년에 일반시장(一般市場)이 완사리(浣紗里)로 다시 이전(移轉)되고 우시장(牛市場)만 남아있다.   1967년 남강(南江)땜으로 구(舊) 장터 마을 전체(全體)와 농토(農土) 20여정보(餘町步)가 땜에 편입(編入) 되었고 뒤 이어 1985년에는 정곡부락(正谷部落) 전부(全部)가 수몰(水沒) 지구(地區)로 편입(編入) 됨으로써 전 마을이 철거이주(撤去移住) 하여야 하는 비운(悲運)을 당하였으나 정부(政府)의 주선(周旋)으로 전가구(全家口)가 곤명(昆明) 중학교(中學校) 앞 들판에 이주(移住)케 되었다.   남강(南江)땜 사무소(事務所)에서 막은 제방(堤防)은 신기(新基), 완사(浣紗), 정곡(正谷), 고월(顧月)로 이어져 길이 2,500m를 이루고 있으며 특산물(特産物)은 전국(全國)에서 가장 양질(良質)의 대마(大麻 : 삼)가 손꼽히고 있고 동한기(冬閑期)에는 고추, 오이 등 하우스 재배(栽培)도 성행(盛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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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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