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삼정리(三亭里) 곤명(昆明)의 최북단(最北端)이며 “백토(白土) 고개”를 경계로 하여 북천면(北川面), 옥종면(玉宗面)과 삼각접경(三角接境)을 이루고 있으며 속칭(俗稱) 곤명(昆明)의 운봉(雲峰)이다. 소재지(所在地)에서 6km 지점(地點)이며 서전(鼠田), 탑동(塔洞), 방광(放光)을 합(合)하여 삼정리(三亭里)라고 했다. 동명(洞名)의 유래를 보면 서전(鼠田)은 마을 뒷 산의 지형이 늙은 쥐가 동네와 들판을 내려다 보는 형국이라 하여 이름 지어졌고 탑동(塔洞)은 고려말(高麗末)에 성지사(誠只寺)가 이 골안에 있었고 탑(塔)이 해방전(解放前)까지 있었던 곳으로 “탑골”이라 부르게 된 것이며 방광(放光)은 백마산(白馬山) 일대에서 일어난 전설에서 “화살의 빛”을 발(發)하였다 하여 이름 붙혀 졌다 한다. 삼정리(三亭里)는 마을마다 정자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으므로 동명(洞名)으로 호칭된 것이다. 탑동(塔洞)은 강씨(姜氏), 서전(鼠田)은 황씨(黃氏), 방광(放光)은 김씨(金氏) 등이 마을 주인(主人)이다. 들 가운데 있는 원수천(源水泉) 샘물은 용출수량(湧出水量)이 많아 삼정리(三亭里)를 비롯하여 은사리(隱士里), 마곡리(麻谷里), 송림리(松林里)의 농지관개(農地灌漑)의 원수(源水)가 되고 있으며 진양호(晋陽湖)로 유입(流入)되는 완사천(浣紗川)의 기점(起点)이 되고 있다. 옛날 곤양군수(昆陽郡守)가 한발(旱魃)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낼적에는 이 물을 제수(祭水)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태봉산(胎峰山) 아래에 널다란 바위가 있으니 이곳이 고반대(考盤臺)이다. 옛날에는 이 바위밑을 냇물이 흐르고 맑은 물에 고기가 뛰놀며 수목(樹木)이 우거져 경관(景觀)이 좋아 향중사림(鄕中士林)이 많이 거처(居處) 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매봉재는 복치산(伏稚山)을 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는데 산형(山形)이 꿩이 업드러 있는것 같고 그 옆의 봉우리가 꿩을 노리는 매(鷹)와 같다 하여 “매봉재”라고 한다. 삼정(三亭)의 입구(入口)에는 약 40년전에 탄맥(炭脈)이 발견되어 채탄(採炭)을 한바 있으나 질(質)이 나빠 폐광(廢鑛) 되었다고 한다. 1919년 3.1운동때 오사재(五思齋) 만세사건(萬歲事件)이 일어난 곳이니 우리가 명념(銘念)할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