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조금조(趙今祚) 一名 趙鏞元 유시(幼時) 성방리(城方里) 거주하였으나 가빈(家貧)하여 부산(釜山)으로 이주(移住) 자수성가(自手成家) 하였다. 1979년 작팔지역(作八地域) 경로기금(敬老基金)으로 100만(萬)원을 쾌척(快擲)하여 현 작팔경로회(作八敬老會)의 시발(始發)이 된다. 노인회(老人會)에서 그의 묘서(墓所)밑에 행적비(行績碑)를 세워 덕(德)을 기리고 있다. 자(子)에 대성목재(大成木材)의 춘제(春濟)와 세일목재(世一木材)의 희제(喜濟)가 있다. 비문내용 : 曰維武松 喜捨巨金 老而養老 鄕友精深 積而能散 稀古于今 頌此昆玉 善護勿侵 作八 城方 滿池 浣紗 敬老會員 立
풀이: 우리 무송(武松) 조용윤(趙鏞允)은 거금(巨金)을 희사(喜捨)했네 이 몸도 늙었으나 늙은이 받드시니 향리(鄕里)의 친우(親友)들도 정(情)이 더욱 깊었도다. 재물(財物) 모아 시사(施捨)하니 고금(古今)에 드물도다. 비(碑)를 심어 송(頌)을 하니 침범(侵犯)하지 말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