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정한(李楨瀚) 호(號)는 창람(暢嵐), 신해생(辛亥生 : 1911), 그는 8.15 광복(光復) 후 초대(初代) 민선(民選) 곤명면장(昆明面長)을 역임(歷任)하고 중앙부처(中央部處)의 요직(要職)을 거쳐 경상북도(慶尙北道)의 청도(淸道),의성(義城), 상주(尙州), 경주(慶州), 안동(安東) 등 군수(郡守)와 초대 포항시장(逋項市長)을 역임하는 동안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갖춘 목민관(牧民官)으로서 민의창달(民意暢達)을 행정(行政)의 지표(指標)로 선정(善政)하여 주민(住民)들로부터 칭송(稱頌)을 받았다. 경상남도의회(慶尙南道議會) 제2대 의장(第二代 議長)에 피선(被選)되어 지역주민(地域住民)의 각광(脚光)을 받았으며 재임시(在任時)는 산적(山積)한 민의(民意)를 일일이 수렴(收斂)하여 도정(道政)에 반영(反映)하는 등 도민복리(道民福利)에 크게 기여(寄與)하였고 특히 지역(地域)의 숙원사업(宿願事業)에 진력(盡力)한 바 컸었다. 만년(晩年)에는 향리(鄕里)인 곤양향교(昆陽鄕校)의 전교(典校)로서 성전중수(聖殿重修) 등 유교문화(儒敎文化)의 유풍(遺風)을 보존(保存) 진작(振作)하는 한편 후진(後進)을 교도(敎導)함에 남다른 공(功)이 컸었다. 특히 안동군수(安東郡守)에서 포항시장(逋項市長)으로 전임시(轉任時)는 안동유사(安東儒士)의 대표적(代表的) 인물(人物)인 옥포선생(玉圃先生)으로부터 송시(頌詩) 한 수 (一首)를 받았는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으니 청송(淸松)같은 고고(高高)한 인품(人品)을 가(可)히 짐작할 수가 있다. 壠西華閥海東李 福地山深水木楨 灑落胸禁如水月 淸纓濁足隨時瀚 롱서의 명문이요 동방의 빛나는 이씨 문중 복된 땅 깊은 산에 수목이 곧았도다. 깨끗한 흉금은 수월같이 맑았기에 밝은 정사 힘쓰다가 세상이 탁하면 언제나 물러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