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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15) 연학상(延鶴祥) 공적비문(功績碑文)   고(故) 연학상(延鶴祥) 선생은 1901년 이 고장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매우 빈한(貧寒)하게 지내시다가 한창 꿈 많은 나이에 혈혈 단신(單身) 일본(日本)으로 건너갔다.   이로부터 오십성상(五十星霜) 선생은 긴 세월을 두고 온갖 고초를 인내(忍耐)하면서 손발이 닳도록 지성(至誠)으로일하여 마침내 자수성가(自手成家) 하였으니 평생(平生) 소원(所願)을 이룩하여 볼려는 꾸준한 노력(勞力)이 한결 같았다.   이러한 선생이 1964년 실로 사십여년(四十餘年)만에 고향(故鄕)땅을 밟았으니 그 감회(感懷)가 어떠하였으리오 길에서 책가방을 들고 어린 학생들을 만나자 이제는 여기에도 학교가 생겼느냐 감탄(感嘆)하시고 문득 당신이 어리던 시절(時節)에 처절한 망국한(亡國恨)을 회상(回想)하였다 한다.   조국(祖國)을 잃어 강산(江山)을 빼앗기고 문맹(文盲)인 채로 타국(他國)에 나아가 살아온 생애(生涯) 우리들 모두가 쓰라린 과거(過去)는 다 있었다.   그러나 선생의 포부(抱負)는 더 한층 간절 하였으리라 그 길로 완사국민학교(浣紗國民學校)를 찾아가서 도서관(圖書館)을 희사(喜捨)하였고 이어서는 곤명중학교(昆明中學校) 설립(設立)이 자금난(資金難)으로 곤경(困境)에 부딪혀 있는 것을 보자 스스로 큰 결심(決心)을 하시어 거액(巨額)을 쾌척(快擲)하여 이층건물(二層建物)을 단독(單獨)으로 지어 주셨다.   이리하여 마침내 면민(面民)의 숙원(宿願)이던 중학교(中學校)가 선생(先生)의 공덕(功德)으로 높이 섰다.   무릇 예사 사람으로서는 하기에 어려운 참으로, 갸륵한 일을 하였으니 거룩하도다. 장한 분이시여!   선생의 큰 공적(功績)은 이 고장의 발전(發展)과 더불어 후세(後世)에도 길이 빛날 것이로다.   여기 이름없는 별들의 영광(榮光)스러운 노고(勞苦)를 함께 기억(記憶)하면서 뜻있는 인사(人士)들의 정성(精誠)을 모아 돌하나 깎아 세우고 그 공적(功績)을 기리다.   조항래 지음   연학명(延鶴祥) 은 1901년 작팔(作八)에서 출생(出生)하여 가난에 못이겨 단신(單身)도일하여 풍찬노숙(風餐露宿)의 고초(苦楚)를 이역(異域)에서 극기(克己)하여 글 모르는 한(恨)을 풀고저 향리(鄕里)에 전재산(全財産)을 투입(投入)하여 곤명중학교(昆明中學校)를 설립(設立)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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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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