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명면지



곤명면지

(13) 정한수(鄭漢守) 사적비(事蹟碑)   위치 : 오사(梧沙)   비문내용 : 전면   鑿山爲江 有水盈溢   一野無旱 居民更活   是誰之恩 惟公之德   嗚呼不忘 樹斯片碣   풀이 :   산(山)을 파서 강(江) 이루니 물이 있어 넘치도다. 가뭄 없는 들판되어 사람들은 살기 좋네 이 누구의 은혜 인가 오직 공(公)의 은덕(恩德)일세 그 은혜(恩惠)를 잊지 못해 사적비(事蹟碑)에 뜻 담았네

후면: 비음소지 오산공몰후삼년지경술춘향리노소함왈공지사적불가인몰벌석이견거촌통로지구이우오향 리불망의덕지만일사김군준기송여청전문여扵공평생필우야이하문불감사내거장이언왈공 휘한수자성욱오산기호야진양인우곡선생휘온십팔세손야지휘명익호아산절연장군자진래곤곤 지위백세망족실자시야고휘갑술비연일정씨포은선생지후야공생유이질총혜탁견자소출군수 심당좌석언론풍의여계군지봉자공지우우차리불유리지시구내면지주석역향중지위일인야고 재세지일리면지사무대소유공시결금위기공칙리린지금차석사기불의연재자수향부노지구담이소 식언 단기사천삼백년경벌청명절 진양강씨달수식 거민일동립 후면: 비음소지(碑陰小識) 梧山公歿後三年之庚戌春鄕里老少咸曰公之事蹟不可湮沒伐石以堅居村通路之衢而寓吾鄕 里不忘懿德之萬一使金君俊起送余請前文余扵公平生必友也以下文不敢辭乃據狀而言曰公 諱漢守字成昱梧山其號也晋陽人隅谷先生諱溫十八世孫也至諱明益號牙山折衝將軍自晋來昆昆 之爲百世望族實自是也考諱甲述妣延日鄭氏圃隱先生之后也公生有異質聰慧卓牽自少出群數 尋當痤席言論風儀如鷄群之鳳自公之寓于此里不惟里之蓍龜乃面之柱石亦鄕中之爲一人也故 在世之日里面之事無大小惟公是決今爲其功則里隣之今此石事其不宜然哉玆收鄕父老之口談而小 識焉 檀紀四千三百年庚伐淸明節 晋陽姜氏達秀識 居民一同立

  풀이:   오산(梧山)이 몰(歿)한지 3년후 경술(庚戌) 봄에 마을 노소(老少)가 모두 공의 사적(事蹟)을 연물(湮沒)하지 못할 것이라 하여 마을 앞 통로(通路)의 거리에 비(碑)를 세워 우리 향리(鄕里)가 잊지 못할 이덕(懿德)의 만분(萬分)의 일이라도 보답(報答)코저 김군(金君) 준기(俊起)가 나에게 전문(前文)을 청(請)하거늘 내 공(公)과는 평생(平生)의 벗이라 하문(下文)으로써 감(敢)히 사양치 못하고 행장(行狀)에 의거(依據)하여 갈오되 공의 휘(諱)는 한수(漢守)요 자(字)는 성욱(成昱)이며 오산(梧山)은 그의 아호(雅號)이다. 진양인(晋陽人) 인데 우곡(隅谷)선생 휘(諱) 온(溫)의 18세손(世孫)이다. 휘(諱) 명익(明益)이고 호(號) 아산(牙山) 절충장군(折衝將軍)이 진주(晋州)로부터 곤명(昆明)에 이거(移居)하니 곤명(昆明)의 백세망족(百世望族)이 이로부터이고 아버지의 휘(諱)는 갑구(甲逑)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이니 포은선생(圃隱先生)의 후(後)이다. 공(公)이 나면서 이질(異質)이 있어 총명(聰明)하고 탁락(卓犖)하여 어려서부터 군중(群衆)에 뛰어나고 언론(言論)과 풍의(風儀)가 닭의 무리(鷄群)에서 봉(鳳)과 같은 존재(存在)였다.   공(公)이 이 마을에 우거(寓居)하면서부터 오직 이 마을의 시구(蓍龜)뿐만 아니라 면(面)의 주석(柱石)이며 또한 향중(鄕中)의 일인자(一人者)였었다. 그러므로 재세(在世)의 날에 마을과 면(面)일에 대소(大小)를 막론하고 오직 공(公)의 결단(決斷)하여 이루게 되었다. 이제 공(公)의 사적(事蹟)을 받들어 이 비석(碑石)을 심음이 맞당하지 아니 하리오 이에 향(鄕) 부노(父老)의 구담(口談)을 거두어 기록(記錄) 하노라


담당자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만족도 조사 민원신청  시장에게 바란다  조직도  공지사항  공고/고시/시험 
페이지 수정요청열기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