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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12) 강재관(姜在寬) 공적비(功績碑)   위치 : 신산(新山)   비문내용 :   세상에 태어나 남을 위해 일 하기를 보람으로 여겨 바른뜻과 착한 행적(行績)을 남기고 간 사람을 가르켜 빛을 남긴 사람이라 일컬으니라 강재관(姜在寬) 선생이 곧 그러 하였으니 선생은 1889년 10월 5일 진주(晋州)에서 나셨다.   장성(長成)함에 마침 국운(國運)이 기울어 겨레의 앞날이 근심 되던 때라 구국(救國)의 높은 뜻을 품고 한성(漢城) 사범학교(師範學校)를 나와 교육계(敎育界)에 입신(立身) 하신지 열 여덟해 만에 곤양(昆陽)보통학교를 마지막으로 교직을 두시니 문하생(門下生)은 무려 천여명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선생은 곤양땅에 영주(永住) 하시게 되었고 이어 곤양면장(昆陽面長) 직(職)을 맡으시여 여섯해 동안 면민(面民)의 복지(福祉)를 위해 일 하셨다. 이후 선생은 애향애족(愛鄕愛族)의 정열(情熱)을 향토개발(鄕土開發)에 돌리시니 1935年에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섬안 강변 황무지(荒蕪地) 5정보를 피 땀으로 개간하여 헐한 값으로 향민(鄕民)들에 나누어 주시었고 1943년에는 용산수리조합(龍山水利組合)을 설립(設立)하여 추천(楸川) 조장(助場) 서정(西鼎) 앞뜰 134정보를 가뭄 모르는 옥토(沃土)로 이루기 위하여 초대(初代) 조합장(組合長)으로 네해 동안 어려운 일들을 보살피고 애쓰셨다. 우거진 숲 노는 땅 노는 사람 없는 살찐 향리(鄕里) 건설(建設)을 평생(平生)토록 염원(念願)하시던 선생의 줄기찬 개척정신(開拓精神)과 향토애(鄕土愛)는 이 큰 역사(役事)를 이루시고 1967년 세상을 뜨시니 향년(享年) 79세를 일기로 하시었다.   지역개발(地域開發)의 기수(旗手)이시며 향리(鄕里) 주민(住民)의 선각자(先覺者)이신 선생의 높은 공적(功績)과 갸륵하신 뜻을 길이 후세(後世)에 전(傳)하기 위해 여기 비(碑)를 세우노니 그 빛은 영원(永遠)히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서기 1972년 10월 일   곤용농지개량조합 용산지구 조합원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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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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