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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6. 리형래(李馨來)   세거(世居) 추동 전주리씨(태조三남 익안대군 十八세손)인데 호는 남재(南齋)요 고종(高宗) 신미생(1871)으로 효우(孝友)와 목족(睦族)이 천성(天性)이었다. 최계남(崔溪南) 문하에서 수학하고 곤양향교 교임(校任)을 지내던 어느날 서울모인(某人)이 찾아와 성균관의지시인양 공부자(孔夫子) 성적도(聖蹟圖)를 각 향교에 봉안(奉安)키로 되었다하고 수백량(數百兩)의 거금(巨金)을 요구한바 있었다. 이에 [논어편(論語篇)이 분명한 사적인데 부탄괴망(浮誕怪妄)한 그림으로 대성(大聖)을 욕되게하느냐] 책망(責望)하여 퇴각(退却)케 하니 인군유민(隣郡儒民)이 듣고 곤양에 인물이 있다 하였다. 어느 해에는 통영(水軍統制營) 이속(吏屬)무리가 통답(統畓) 봉세징수(捧稅徵收)시 관두삭평(官斗削平)의 율(律)을 어기고 조작한 사두로 고상(高上) 수납함으로써 민원이 철천(徹天)함을 듣고 현장을 찾아 시정을 요구하니 도리어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언동인지라 대로(大怒)하여 대두(大斗)를 절파(折破)하자 소식을 들은 군수와 아전이 경구(驚懼)하니 “원성을 몰으시오” 곧 흩어진 두편(斗片)을 증거로 수습하고 진주 관찰사(觀察使)를 찾아 호소(呼訴)하여 민폐(民弊)를 종식(終熄)케 하니 모두 혜택을 칭송하더라 언제나 장덕고사(長德高士)를 찾아 배움을 원하는 일념(一念)은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선생으로부터 문학(文學)으로 추장(推獎)되고 모성모현(慕聖慕賢)의 정성으로 성리학(性理學)의 태두(泰斗)인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선생의 유지(遺址)를 찾아 악양정(岳陽亭)을 중건(重建) 함에 정역(亭役)으로 선임(選任)되어 거중(巨重)한 역사(役事)를 마치고 낙성식에 면암선생을 모셔와 중건기문(重建記文)을 찬(撰)하게 하였다. 이어 일두선생 실기(實記)를 함양 람계서원(蘫溪書院)에서 중간(重刊)함에 도검역(都檢役)을 맡아 수성(輸誠)하는 등 숭유(崇儒)의 전통보존에 성심을 다하였다. 때는 날로 국운이 기울어 경술국치(庚戌國恥) 후는 망국의 시름을 달래며 은거(隱居)하여 뜻을 구하고자 동지들과 십일회(十逸會)를 결사(結社)하고 별호(別號)를 경일(耕逸)이라 자호(自號)하여 종신(終身)토록 구국염원(求國念願)하다가 반백(半百)에 세상을 뜨니 아우 성래(聖來) 통곡으로 자실(自失)하여 뒤따라 운명하니 세인(世人)이 효친우제(孝親友弟)에 감탄(感歎)하고 아까운 인물 잃었다 하였다.   -南齋遺矯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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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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