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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10. 김유인 사행문(金孺人 事行文) <作八里>   옛 성왕(聖王)은 정치(政治)를 하매 효자(孝子)와 충신(忠臣) 열녀(烈女)를 반드시 정표(旌表)하였고 이러한 사행(事行)을 보고 들음(聽)을 권면(勸勉)하였다.   왕법(王法)이 폐(癈)함으로부터 풍기(風紀)가 퇴패(頹敗)하여 향중(鄕中)에 오자(忤子)와 한부(悍婦 -독살스럽고 사나운 여자)가 왕왕(徃徃)이 있으니 개탄(慨嘆)한 일이다. 그러하나 천성(天性)이 민멸(泯滅)하지 않은 자(者) 있으니 사천(泗川)의 곤명작팔(昆明作八)의 김유인(金孺人)이다.   그는 쇠세(衰世)에 특행(特行)이 있어 유지인사(有志人士)들이 찬환(贊歡)하여 찬양(闡揚)함을 모의(謀議)하였다.   유인(孺人)은 사인(士人) 김해(金海) 김용호(金鏞鎬) 의 딸로서 함안(咸安) 조병제(趙炳濟)의 처(妻)이다.   구고(舅姑=시부모)를 잘 섬겼으며 구(舅=시부)가 술을 좋아 하였는데 가혹(苛酷)한 왜정(倭政)의 금주령(禁酒令)이 있을 적에도 밀장(密藏)하여 두고 날로 공양(供養)하여 수십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부군(夫君)이 치장(痔瘡=지질, 부스럼)을 앓아 사경(死境)에 이르러 의원(醫員)이 치유(治癒)치 못한다 하므로 유인(孺人)이 날마다 그 상처를 입으로 빨아 수년(數年)후에는 완쾌케 하였고   또 구고(舅姑)의 노병(老病) 누년(婁年)에 미음(米飮) 드리는 것과 대소변(大小便) 제(除)하는 일 와기(臥起=눕히고 일으킴) 의 부호(扶護)에 이르기까지 유인(孺人)이 몸소하여 병자(病者)로 하여금 고통(苦痛)을 덜받게 하기 20년 가까이 권고(勸苦)함을 다하니 이웃 사람들이 한결같이 칭찬하였다.   만포(晩圃) 이종태(李鍾泰)군이 세도(世道)가 오하(汗下=웅덩이 같이 내려감)하여 유인(孺人)의 사행(事行)이 민멸(泯滅)될까 싶드니 마침 운안(雲菴) 설동찬(薛東鑽)씨와 더불어 천양(闡揚)을 모의(謀議)하니 동리(洞里)에 많은 동의자(同意者)가 많아 드디어 돌을 깎아 도로변(道路邊)에 세우고저 하여 내에게 글을 청하므로 내만포(晩圃)와 더불어 좋다고 감탄(感嘆)하며 이글을 쓰는바 장차 불효(不孝) 불순한 사람으로 하여금 보고 들어 그의 얼굴이 붉어지며 개과천성(改過遷善)할 사람 있으리라 경술(庚戌)=1970년 상원절(上元節) 거창(居昌) 신호성(愼昊晟) 찬(撰)이다.

김 유 인 사 행 문 석성왕지치세야유자효신충녀열자필정표지이려관청자왕법폐이풍기퇴패향곡지간오자한부徃 徃이출가승개재연이천부지성유유말진민자약사천지곤명작팔금유인기비쇠세지특행이유지인 토의기찬환이각소이천양지야유인적금해고토인용호지녀귀함안조병제선사구고구성기주당왜 정권금유인밀장일공수십년불해부통치창규호이사의불능치유인일연지수년이유후치구고노병 미류각루년척수지공뇨시지제이지와기부호유인무궁위지사병자기기고전후근이십년기근고극 의린인개일사칭지만포이종태군상만연우세도지한하이탄유인지사행민몰적여운암설동찬씨모 위천양계동한지동의자다수벌석립지도주징사우여여여만포선위지감탄이서지장사불효불순지 인견문소급필유성기안이회개자의 경술상원절 거창 신호성 찬 金 孺 人 事 行 文 昔聖王之治世也有子孝臣忠女烈者必㫌表之以厲觀聽自王法癈而風紀頹敗鄕曲之間忤子悍婦徃 徃而出可勝慨哉然而天賦之性猶有末盡泯者若泗川之昆明作八金孺人豈非衰世之特行而有志人 土宜其贊歡而閣所以闡揚之也孺人籍金海故土人鏞鎬之女歸咸安趙炳濟善事舅姑舅性嗜酒當倭 政權禁孺人密藏日供數十年不懈夫痛痔瘡呌號夷死醫不能治孺人日吮之數年而愈後値舅姑老病 彌留各屢年滌隨之供尿屎之除以至臥起扶護孺人無躬爲之使病者忌其苦前後近二十年其勤苦極 矣隣人皆一辭稱之晩圃李鍾泰君甞悗然于世道之汗下而嘆孺人之事行泯沒適與雲庵薛東鑽氏謀 爲闡揚計同閈之同意者多遂伐石立之道周徵辭于余余與晩圃善爲之感歎而書之將使不孝不順之 人見聞所及必有騂其顔而悔改者矣 庚戌上元節 居昌 愼昊晟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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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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