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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6. 열부(烈婦) 함안조씨사적서(咸安趙氏事蹟序) <金城里>   열부문(烈婦門) 위치 : 완사(浣紗)   오오 부군(夫君) 이 가신지라 내 살면 무엇하리 하면서 비통(悲痛)한 세월(歲月)을 보내셨다. 그는 차라리 죽어 지하(地下)로 가는 것만 못한 것 같았다. 이것이 고금(古今)의 열부(烈婦)의 심정(心情)이었을 것이니라 목을 매고 독약(毒藥)을 먹고 샘물에 빠지고 식음(食飮)을 끊는 일은 왕왕(往往)히 있었던 일이었다.   열(烈)에 열(烈)을 더하여 이제 또 지나간 백고(百古)와 오는 천세(千世)에 없는 합천 이효석(陜川李孝錫)의 부인(夫人) 함안조(咸安趙) 유인(孺人)의 열(烈)이다.   부군(夫君)이 죽는날에 한 소리로 애통(哀痛)하고 난후에는 심(甚)히 비곡(悲哭)하지 아니하여 천연(天然)한 안색(顔色)으로 시부모(媤父母)를 위로(慰勞)하며 가산(家産)을 정돈(整頓)하여 마음 편히 사는 것 같더니 삼상(三祥)을 마치는 새벽에 궤헌(饋獻=제사를 치루는 일)을 예(禮)대로 하고 이날 야심(夜深)에 목욕(沐浴)하고 옷을 가라입고 벼개를 벼고 눕거늘 가인(家人)이 그의 기식(氣息)이 괴이(怪異)하여 이상(異常)하게 여겨 그옆에 둘러앉아 부르니 작은 소리로 하는 말이 부군(夫君)이 가신지 이미 3년이 지났으니 나의 삶도 오래 되었네 하고 숨을 거두었다.

  오오 부군(夫君)이 가신 날에 죽음을 분별 한다 하였더니 부군(夫君)의 송종(送終)에 유감(遺憾)이 있을까 두러워 하여 손수 수의(壽衣)를 마련하고 또 부군(夫君)의 궤전(饋奠)에 불성(不誠)할까 두러워서 조석(朝夕)에 몸소 반드시 드리고 부군(夫君)의묘(墓)에 의물(儀物)이 없어서는 안된다 하여 패물(佩物)을 팔아 그 비용(費用)에 쓰고 부군(夫君)의 유문(遺文)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하여 미처 마치지 못한 글을 보사(補寫)하여 부군(夫君)의 마음과 자취를 민멸(泯滅)치 않게 저작(著作)하였고 또 장사(葬事)때의 만사(輓詞)를 항상 읽어 보더라.   의복(衣服)을 철 따라 짓지 못하면 어찌 중생(衆生)의 뜻이 있으리요 하고 사시(四時)에 반드시 개제(改製)하여 영좌(靈座)곁에 두었고 죽은뒤에 세 개의 보자기에 싼 것이 소장(所藏)에서 나온 즉 시부모의 세시(歲時)의 옷이니 임몰(臨沒)에 지어 둔 것이다. 나머지는 다 그의 장래(將來)를 이을 아들과 며느리의 것이다.   곁에 유서(遺書)가 있었으니 보는 사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자 없더라.   유인(孺人)의 마음에는 언제나 부군(夫君)이 자리 잡고 있어 일각(一刻)이라도 잊지 못하였다는데 3년이란 긴 세월 동안 비통(悲痛)을 참아(忍) 가며 할 도리(道理) 다 하기를 이와 같이 주상(周詳) 하였을까   오오 그 부군(夫君)을 저버리지 아니함은 인간(人間)을 초월(超越)함이라 세상(世上)에 처음 보는 열(烈)이었다 하다.   효석(孝錫)의 아우 정호(正鎬)가 그 몽정(蒙旌)의 전후(前後) 문자(文字)를 간출(刊出)하여 세상(世上)에 전(傳)하니 그도 또한 도리(道理)를 아는 사람이었다.   정축(丁丑) 중양일(重陽日)   영가(永嘉) 권상연(權相淵) 서

  열부함안조씨사적서   명호부자몰의아생하위비초송세월갈약편즉합연동귀지하차고금열부지위심연야치경앙약투정   단식음등사왕제유지열호열의이금우유왕백고래천세소미유지합천이효석부인함안조유인지열언   성붕지초일성애통외불심비곡이천연안색위비구고정돈가산약장이시우황어세자지서종지최궤   헌여예시일야심목욕경의원침이와가인괴기기식이상환좌호지칙미응왈부자지몰기삼년의아지   생불역구호인폐호급단송일루명호판일사어변출지시이공송종부자유감칙금수수자봉공궤전부   자불성칙조포궁필헌부자지묘의물불가궐척패식이의기비부자지수묵불가기보사기소등미졸지   서불인민부자심적수십기소작급장시만뢰등상우목언위의복불이시제오재기상생지의사시필개   제치영좌방약기신후삼복리지출어소장칙구고세시지의림몰이유제치야여개유기장래계후자부   자야방유유서견이운루자인막불연유인지심필왈부자부자이미혹일각망야하능인비어삼년지간   이곡진도리약시기주상이불박이명호기불부부자의기초어인원의기광세시견지열의효석제정호편   차기몽정전후문자장간전우세기역식리자의유   정축중양일 영가권상연 서   烈婦咸安趙氏事蹟序   鳴乎夫子沒矣我生何爲悲憷送歲月曷若便卽溘然同歸地下此古今烈婦之爲心然也雉經仰藥投井   斷食飮等事往々有之烈乎烈矣而今又有往百古來千世所未有之陜川李孝錫夫人咸安趙孺人之烈焉   城崩之初一聲哀痛外不甚悲哭以天然顔色慰비舅姑整頓家産若將以是寓況於世者至서終之最饋   獻如禮是日夜深沐浴更衣援枕而臥家人恠其氣息異常環坐呼之則微應曰夫子之沒己三年矣我之   生不亦久乎因閉呼伋斷送一縷鳴乎辦一死於變出之始而恐送終夫子有憾則衾檖手自縫恐饋奠夫   子不誠則朝晡躬必獻夫子之墓儀物不可闕斥珮飾以擬其費夫子之手墨不可棄補寫其所謄未卒之   書不忍泯夫子心迹收拾其所作及葬侍輓誄等常寓目焉謂衣服不以時製烏在其象生之義四時必改   製置靈座傍若其身後三栿裏之出於所藏則舅姑歲時之衣臨沒而猶製置也餘皆遺其將來繼后子婦   者也傍有遺書見而隕淚者人莫不然孺人之心必曰夫子夫子而未或一刻忘也何能忍悲於三年之間   而曲盡道理若是其周詳而不迫二鳴乎其不負夫字矣其超於人遠矣其曠世始見之烈矣孝錫弟正鎬編   次其蒙旌前後文字將刊傳于世其亦識理者矣遺   丁丑重陽日 永嘉權相淵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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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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