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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12. 강도순(姜道順) <隱士里>   친부(親父)는 마곡리(麻谷里) 강우현(姜又鉉)으로서 은열공(殷烈公)의 후예(後裔)이다.   17세에 은사리(隱士里) 평창인(平昌人) 이문섭(李文燮)과 성혼(成婚) 하였으니 이문섭(李文燮)은 11대(代) 종손(宗孫) 임으로 종부(宗婦)로서의 범절(凡節)이 엄격(嚴格)한 종사(宗祀)를 가례(家禮) 에 어긋남없이 치루워 왔다.   결혼 수년후 6.25사변(事變)이 발발(勃發)하자 남편 이문섭(李文燮)은 군(軍)에 입대(入隊)하여 국토방위(國土防衛)의 임무(任務)를 다하고 제대(除隊)하여였으나 고된 복무(服務)의 후유증(後遺症)으로 와병(臥病)하여 간호(看護)의 보람없이 수년(數年) 신고(辛苦) 타가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었으니 이때의 강도순(姜道順)의 나이 28세(歲)이었고 시부(媤父) 이호범(李好凡)은 회감(回甲)을 지낸 61세(歲)었다.   강도순(姜道順)은 창자를 예이는듯한 남편(男便) 잃은 슬픔도 운명(運命)으로 돌리고 홀로 외로운 시부(媤父) 봉양(奉養)을 아들 목까지 다 해야 되겠다는 일념(一念)과 유자(遺子) 삼남매(三男妹)를 사회(社會)에 욕(辱)됨이 없이 훌륭히 키우겠다는 결심(決心)을 굳게 가저 이때부터 부녀(婦女)로서는 치룰 수 없는 고역(苦役)을 인내(忍耐)로서 일관(一貫)하였다.   특(特)히 시부(媤父) 섬김에 있어서는 30년간 노환(老患)의 시부(媤父)를 하루도 변(變)함없이 목욕(沐浴)과 의복(衣服)을 갱의(更衣)하고 한 방(房)에서 함께 기침(起寢)하며주야(晝夜) 지성(至誠)으로 보살폈으니 오늘날 메마른 사회(社會)에서는 찾기 힘든 효부(孝婦)이다.   아울러 집안 어른과 이웃 어른에게도 내 부모(父母) 대하듯 공경(恭敬)을 다하고 종부(宗婦)의 의무(義務)도 정성(精誠)을 다하였으니 인근(隣近) 모두가 세인(世人)이 본 받을 일이라 칭송(稱頌) 되어 곤명 노인회로부터 표창(表彰) 받았었다.   한편 자녀(子女) 들도 자모(慈母)의 지극(至極)한 가르침에 보람있어 장남 석만(錫萬)은 동방생명(東邦生命)과 차남 석기(錫基)는 통신공사(通信公社)의 각기 요직(要職)에서 임무(任務)를 다하면서 모의(母意)를 성실(誠實)히 받들고 있다.   강도순(姜道順)은 현재 58세로서 91세의 시부(媤父)를 모심에 일편(一片)의 변(變)함 없는 효행(孝行)과 가장역(家長役)을 다하고 있는 여장부(女丈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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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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