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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10. 정중규(鄭中圭)   호(號)는 외당(畏堂)이요, 회봉(晦峰) 하겸진(河謙鎭)의 문하생(門下生)으로서 수학(修學)하고 경사(經史)와 고전(古典)을 섭렵(涉獵)하였으니 우리 곤명(昆明)이 낳은 유사(儒士)로서 보배로운 존재(存在)이다.   근세인(近世人)으로서 드물게 보는 효자(孝子)임은 알고 있었지만 금반(今般) 개방(開放) 대학(大學) 정헌교(鄭軒敎) 국문학교수(國文學敎授)로부터 기교(寄稿)있기에 내용(內容)을 발초(拔抄)한다.   “윤리도덕(倫理道德)이 퇴폐일로(頹廢一路)에 있는 요즈음 만인(萬人)의 규범(規範)이 될 돈실(敦實)한 효성(孝誠)을 가진자(者) 있으니 바로 곤명(昆明)의 정중규(鄭中圭)다.   부모(父母)를 섬김에 있어 어버이 식사전(食事前)에는 밥을 대(對)하지 않으며 새 음식(飮食)을 대(對)할 때 부모(父母)님이 맛 보지 않은 음식은 결(決)코 입에 넣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부모(父母)님 옆에서 고금담(古今談)을 엿쭈어 위안(慰安)케 하고 밤에 취침시(就寢時)에는 자정(子正) 이경(二更) 사경(四更)의 세차례에 걸쳐 문 밖에서 동정(動靜)을 살펴 평안(平安) 여부(與否)를 관찰(觀察)하였다.   아버지 당상(當喪)을 입자 예(禮)대로 치상(致喪)함은 자식(子息)으로서 공통사(共通事)이지만 3년을 하루같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를 가리지 않고 아침과 저녁에 꼭 알묘(謁墓)를 하였음은 근대인(近代人)으로서는 염두(念頭)도 못 낼 일이다.   또, 선왕고(先王考=할아버지)를 추앙(推仰)코저 재실(齋室) 일우당(一愚堂)을 아담하게 짓고 비(碑)를 세우니 원근(遠近)의 선비들이 일우계(一愚契)를 모아 그들과 더불어 경건(敬虔)하게 추모(追慕)하고 있다.   한 사례(事例)를 말하면 수년전 벗들과 회식(會食)을 함께 하는데 밥상에 오른 대구(鱈魚)국에 숟가락을 대지 않음으로 좌우(左右)에서 그 까닭을 물어도 묵묵(黙黙)히 김치와 간장(醬)으로 식사(食事)를 치루고 답(答)하지 않았다.   후일(後日) 알고 보니 아버님의 신미(新味) 이전(以前)이라 하여 입에 넣지 않았고 벗에게 말하지 않음은 구미(口味)를 상(傷)할까 바 입을 떼지 않았다 하니 모두들 감복(感服)하고 부모(父母)를 둔 사람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할 일이 있다.   이웃에 살지 않았고 사귐이 오래 되지 않아 세세(細細)한 행적(行績)은 알길이 없으되 이상의 효행(孝行)만 보와도 글로써는 쉬우나 행동(行動) 하는데는 감(敢)히 누가 이에 따를 수 있으랴.   효도관렴(孝道觀念)이 날로 희박(稀薄)해지고 연소층(年少層)이 장유(長幼)를 가리지 않는 요즈음 이런 독행(篤行)을 현창(顯彰)하고 많은 사람에게 귀감(龜鑑)이 되면 후생(後生)에게 교훈(校訓)이 되고 산 교육(敎育)의 자료(資料)가 되었으면 하는 폐부(肺腑)의 심정(心情)에서 이 글을 쓴다.   鄭憲敎敎授孝行講義論文에서 1981年 泗川郡守로부터 孝子賞受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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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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