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명면지



곤명면지

8. 윤석곤(尹碩坤)   거소지(居所地) 사천군 곤명면 금성리 파평인(坡平人)으로 시조(始祖) 태사공(太師公) 휘(諱) 신달(莘達)의 33세손(世孫)이다.   어려서부터 유학(儒學)에 정려(精勵)하여 삼강오상(三綱五常)을 생활신조(生活信條)로 하여 대인관계(對人關係)에 있어 온후(溫厚)와 겸양(謙讓)으로 일관(一貫)되어 일생(一生)을 통하여 가족(家族)과 친지(親知)를 막론(莫論)하고 다툼과 화를 낼 일이 없었다 한다.   그는 조석(朝夕) 의 어버이 문후(問候)에는 언제나 정장(正裝)을 하였으며 식상(食床)은 부인(婦人)과 자녀(子女)에게는 일체 맡기지 않고 손수 들었으며 밥상의 찬(饌)에는 계절(季節)에 따른 어육(魚肉)이 아무리 궁핍(窮乏) 생활(生活)에도 잊지 않았다 한다.   한편 이웃 어른을 섬김도 부모(父母)대 하듯 하였으며 남 다른 효성(孝誠)과 어른 존경(尊敬)에 부로(父老)들로 부터는 양친(兩親)의 복(福)됨을 부러워 하는 이야기로 꽃 피워졌다 한다.   통영(統營) 거주시 통영읍(統營邑) 상조회(商助會)로부터 본인(本人) 모르게 효행포상(孝行褒賞) 방침(方針)을 알고 이를 왕강(頑强)히 거절(拒絶)하였으나 본의(本意)에는 아랑곳 없이 종국(終局)에는 시상(施賞)이 이루워 졌다.   1945年 엄친(嚴親)이 작고(作故)하자 예절(禮節)에 어긋함이 없이 복제(服制)를 다하고난 1949년 편모(偏母) 남원양씨(南原梁氏) 가 노환(老患)으로 두 눈이 실명(失明)케 되자 이를 개안(開眼)하려고 약방(藥房)과 명의(名醫)를 찾아 노모(老母)를 업고 다니기 5년 유여(有餘)의 지성(至誠)이 보람없이 자당(慈堂)의 눈은 밝음을 찾을길 없었다.   이때 금성리(金城里)에서는 그 효행(孝行)에 감탄(感嘆)하여 효도포상(孝道褒賞)을 하려 하였으나 본인은 끝내 불응(不應)하였다.   윤석곤(尹碩坤) 은 자모(慈母)의 개안(開眼) 안됨이 불효(不孝) 부덕(不德)의 자신(自身) 소치(所致)라 여겨 효성(孝誠)이 부족(不足)함을 통탄(痛嘆)중 드디어 자리에 누워 병고(病苦)타가 1956년 어머니를 남긴채 타계(他界)하였다.   장례(葬禮)때 금성리(金城里)에서는 제문(祭文)을 지어 이영수(李永秀)가 읽으니 그 구절 구절이 효행(孝行)으로 일생(一生)이 엮어저 남녀조객(男女弔客)들로 하여금 애통(哀痛)과 눈물 안 흘리는 자(者) 없었다 하니 능(能)히 후대(後代)는 거울 삼아 본받을 일이라 본다.   아들 윤재덕(尹在德)은 진주 수도(水道) 사업소장으로 재직(在職)하고, 장손(長孫) 윤철영(尹鐵榮)은 진양군청(晋陽郡廳)에 근무(勤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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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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