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명면지



곤명면지

6. 김진구 (金鎭球) <本村里>   아들이 부모(父母)에게 효(孝)함은 천성(天性)이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어린애가 그의 부모(父母)를 사랑함을 알지 아니하는바 없다 하였으니 성품(性品)이 고유(固有)한바로 인(因)하여 행(行)하는 것이니 어찌 쉽게 이루지 않으겠는가 우리 일가(一家)에 휘(諱) 진구(鎭球) 자(字) 성현(性見)이 효(孝)로써 읍지(邑誌)와 환여승람(寰輿勝覽)에 기록(記錄)되었었다.   그의 손자(孫子) 동학(東學)이 내한테 와서 묘명(墓銘)을 청(請)함으로 공(公)의 일을 살피건대 항상(恒常) 하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부모의 뜻을 순(順)이 받들어 작은일도 어김이 없었고 부모가 병(病)들어 계실적에 근심하며 의원(醫員)을 맞아 약(藥)을 지어 시탕(侍湯)에 정성(精誠)을 다하였음이 알려지자 종족(宗族)이 칭찬(稱讚)하고 마을에서도 기뻐 하였으며 향지(鄕誌)와 승람(勝覽)에까지 미치게 이르렀다.   내가 근래(近來)에 말하는 효(孝)를 보니 기특(奇特)한 일을 나열(羅列)하는데 이것은 믿음성이 없으나 공(公)의 효(孝)는 기특(奇特)함이 없이 순수(純粹)한 행실(行實)이므로 이것이 사람의 뜻을 움직이게 함이었다.   일선김씨(一善金氏) 문강공(文康公) 강호선생(江湖先生) 휘(諱) 숙자(叔滋) 가 그의 저조(著祖)이다. 선생(先生)의 10세(世)에 천징(天澄) 천일(天逸) 형제(兄弟) 두분이 제창(濟昌)으로부터 사천(泗川)에 이거(移居)하여 사천(泗川)사람이 되었다. 공(公)은 장공(長公)의 후(后)이다. 효(孝)는 백가지의 근원(根源)이니 나머지는 다 절로 되는 법   향지(鄕誌)와 환람(寰覽)에 그 사적(事績) 실렸더라   모범(模範)됨이 혁혁(赫赫)하니   뭇 사람이 우러러 보네   하물며 후손(後孫)들이야   어찌 추술(追述)치 않으리오   족생(族生) 병수(丙秀) 찬(撰)

효자금공진구사적문 자지효어친천성야고맹자왈해제지동유무불애기친인기성지소고유자이행지기불역이치재술고오 종유휘진구자성견이효재재읍지급환여승람일기손동학래여청묘명안공지사불월호일용지상이 승순기지수미세필종무위급기병야색우영의합약능진기성종족칭지향당설지이급어향지승람야 여관금지소위효자다설기특지사시말필취신어인이공지위효무심기특차소이동인지지야여공일 선김씨문강공강호선생휘숙자기저조이선생지십세유왈천징천일곤계이공자제창이거사천금위 사인공장공지후야 시위백원여개가수향지환람재재궐실혁혁모유중만유설신자손예갈불추술 족생병수 찬 孝子金公鎭球事績文 子之孝於親天性也故孟子曰孩提之童有無不愛其親因其性之所固有者而行之豈不易以致哉述故吾 宗有諱鎭球字性見以孝載在邑誌及寰輿勝覽日其孫東學來余請墓銘按公之事不鉞乎日用之常而 承順其志雖微細必從無違及其病也色憂迎醫合藥能盡其誠宗族稱之鄕黨說之以及於鄕誌勝覽也 余觀今之所謂孝者多說奇特之事是末必取信於人而公之爲孝無甚奇特此所以動人之志也與公一 善金氏文康公江湖先生諱叔滋其著祖而先生之十世有曰天澄天逸昆季二公自濟昌移居泗川今爲 泗人公長公之後也 是爲百源餘皆可悉鄕誌寰覽載在厥實赫赫謨猷衆萬猶說矧玆孫裔曷不追述 族生丙秀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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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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