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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1. 정이심(鄭以諶)   정이심(鄭以諶)의 부(父)는 대수(大壽)인데 문사(文士)였으며 호(號)는 오봉(鰲峰)이니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의병(義兵)을 모군(募軍)하여 출진(出陣)한 우국지사(憂國之士)였다.   이심(以諶)은 부모(父母)를 섬김에 있어 잠자는 것도 잊고 극진히 봉양(奉養)하는 사례(事例)가 너무 많아 열거(列擧)를 못할 정도 (程度)라 한다.   선조(宣祖) 32年과 35年에 부모상(父母喪)을 연(連)이어 입어 용산리(龍山里) 용봉산하(龍鳳山下) 에 안장(安葬)하고 효(孝)의 불성(不誠)함을 애통(哀慟)하여 6年間 시묘(侍墓)하였다 하니 가(可)히 하늘에서 내린 효자(孝子)이다.   시묘중(侍墓中) 맹수(猛獸)가 항상(恒常) 곁에서 보호(保護)하였다 하며 그러자니 손자(孫子)가 거주지(居住地)인 초량(草梁)에서 용산(龍山)까지 십리(十里)의 험산(險山)을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를 가리지 않고 시묘소(侍墓所)까지 6年間 조석식반(朝夕食飯)을 가지고 다녔으니 어느듯 그 길이 손도(孫道)라 불리어 지고 동명(洞名)도 효자(孝子)를 기리는 뜻에서 손도(孫道)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시묘(侍墓)가 끝난 뒤에도 부모혼백(父母魂魄)과 함께 지내고자 묘하(墓下)에 집을 지어 조석(朝夕)으로 성묘(省墓)하였으니 이 집을 스스로 모헌(慕軒)이라 하였고 호(號)도 모헌(慕軒)이라 하였다.   효자(孝子) 정이심(鄭以諶)은 조남명(曺南冥)의 문하생(門下生)이며 정동계(鄭桐溪) 하겸재(河謙齊)등과 친교(親交) 하였고 겸(兼)하여 나라를 아끼는 마음이 강(强)하여 모화사상(慕華思想)에 일변도(一邊到)된 당시(當時)에도 아예 청국(淸國) 달력을 보지 않는 지사(志士)였다 한다.   후손(後孫)은 직계(直系)로는 진주(晋州)에서 변호사업(辯護士業)을 하고있는 정인석(鄭仁錫)이고 방계(傍系)는 정윤석(鄭允錫) 정희갑(鄭禧甲) 정재홍(鄭在洪) 등이다.   -목사(牧使) 정현석(鄭顯奭) 봉안문(奉安文)에서 초(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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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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