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김해허씨(金海許氏) 연당파(蓮塘派) 성방<城方> 시조(始祖)에서 15세손(世孫) 휘(諱) 국주(國柱)는 임진왜란(壬辰倭亂)때 권왕운동(勤王運動)을 일으켜 왜군항거의식(倭軍抗拒意識)을 고취(鼓吹)시킨 공로(功勞)로 훈록(勳錄)에 수록(收錄)되어 있다. 파조(派祖) 동립(東岦)은 호(號)가 연당(蓮塘)으로 시조(始祖)에서 17세손이다. 파조(派祖)에서 7세손(世孫)이 용(榕)인 진양군(晋陽郡) 지수면(智水面) 승산(勝山)에서 풍수(風水) 학설(學說)인 [생거하동(生居河東)이요 사거곤양(死去昆陽)이라]는 설(說)에 따라 1830년대 하동군 양보면 우복(愚伏)에 이주(移住)하였다 그가 타계(他界)하자 곤양면 묵곡(黙谷)에 안장(安葬)하였다. 8세손 엽(燁)이 1880년대에 봉계리(鳳溪里) 저동(苧洞)에 전거(轉居)하였다가 다시 송림(松林)으로 옮기고 10세손 만형(萬亨)이 1915년에 성방(城方)에 이주(移住)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입곤명(入昆明)후 5대째이며 손세(孫勢)는 7호이고 문장(門長)은 맹용(孟用)이니 파조(派祖)에서 11세손(世孫)이다. 종손(宗孫)은 남덕(南德)인데 12세손으로 서울에 거주하며 전 곤명면의회 의장(議長) 진구(辰九)는 11세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