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청주한씨(淸州韓氏) 참의공파(參議公派) 송림<松林> 파조(派祖) 휘(諱) 전(磌)은 시조(始祖)로 부터 13세손(世孫) 인바 이조(李祖) 단종조(端宗朝) 에 참의(參議) 및 전라감사(全羅監司)었으나 단종(端宗)폐위후(癈位後) 벼슬을 버리고 경기도(京畿道) 고양(高陽)에 귀향(歸鄕)하여 제현(諸賢)과 더불어 도덕(道德)과 학행(學行)으로 일관(一貫)하였다. 15세손 홍(弘)은 문장덕업(文章德業)이 당세(當世)에 추중(推重)되어 거유(巨儒) 조정암(趙靜庵)과 수신교우(修信交友)하였고 기묘사화(己卯士禍=1519)로 국정(國政)이 난맥(亂脈)되자 공명(功名)을 버리고 전라도(全羅道) 남원송동(南原松洞)으로 은거 하였다. 20세손 하수(河壽)는 학행저세(學行著世)였으나 남원민난(南原民亂)으로 화(禍)를 입었고 부인(夫人) 박씨(朴氏)가 그의 아들인 젖먹이(乳兒)를 피신(避身)시켜 혈통(血統)을 계승(繼承)하였다 하고 24세손 창대(昌大)의 아들 8형제중 종식(宗式) 종필(宗弼) 두 형제가 송림(松林) 오랑동(五郞洞)에 자리 잡았다하니 당시가 영조(英祖) 17년(1741)이다. 현재 33세손까지 이어오니 입곤명(入昆明)이 250년이 되고 손세(孫勢)는 19호이며 그중 곤명거주 7호이고 나머지는 진주(晋州) 마산(釜山)에 살고 있다. 종중(宗中)대표는 32세손 기상(基相)이고 종손(宗孫)은 재규(再圭)이니 32세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