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진양하씨(晋陽河氏) 신당공파(新塘公派) 금성<金城> 시조(始祖)로부터 17세손(世孫) 휘(諱) 공헌(公獻)은 친상여모(親喪廬墓)한 지효인(至孝人)이였고 이어서 임란시(壬亂時)에 창의위문포고(倡義爲文布告)와 더불어 삼장사(三壯士)와 함께 분전순사(奮戰殉死)한바다. 난중(亂中)으로 시신(屍身)을 못찾아 근사봉유(殣事奉遺)함이 임진록(壬辰錄)에 기록(記錄)되어 있다. 22세손 (世孫) 대봉(大奉)은 숙종조(肅宗朝)에 등과(登科)하였고 기절(氣質)이 청숙(淸肅)하고 문사경박(文詞宏博)이였다. 25세손(世孫) 운백(運伯)이 신흥(新興)에 살다가 곤양가화(昆陽加花)로 이주(移住)한 바 나 28세손 용백(龍伯)이 금성(金城)으로 이주(移住) 금일(今日)에 이르다. 후손(後孫)은 40여호(餘戶)에 달(達)하나 곤명거주(昆明居住)는 15호이고 그 외는 진주 부산 서울 등지(等地)에 살고 있다. 종손(宗孫)은 29세손(世孫) 판규(判逵)이고 문중대표(門中代表)는 28세손 용운(龍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