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창녕조씨(昌寧曺氏) 충익공파(忠翊公派) 본촌<本村> 시조(始祖)의 휘(諱)는 계룡(繼龍)으로 신라(新羅) 진평왕(眞平王)의 부마(駙馬)이다. 23세손(世孫) 문택(文澤)은 좌리공신(佐理功臣)으로 청백리(淸白吏) 로서 후세(後世)에 까지 명전(名傳)하고 있으니 시호(諡號)는 충익(忠翊)이며 곤명(昆明) 거주조씨(曺氏) 의 파조(派祖)이다. 파조(派祖)에서 12세손(世孫) 하게(夏啓) 는 문장덕행(文章德行)이 겸유(兼有) 하였으니 호(號)가 산음재(山陰齋) 이고 후손(後孫) 이 산음재(山陰齋) 에 봉행(奉享)하고 있다. 1690년(壬年)에 소곡면(所谷面) 송림리(松林里) 에 이주(移住)하였다가 산수(山水)와 들이 맑고 좋은 곤명촌(昆明村)이 은인군자(隱人君子)의 살곳이라 보아 1692년 이곳에 정착(定着)함이니 입곤명(入昆明) 11세손(世孫)까지 이어 졌으니 300여년에 이르렀다. 손세(孫勢)는 150여호에 달하며 곤명(昆明) 거주는 15호 그밖에는 진주(晋州) 하동(河東) 등지에 주(主)로 살고 있다. 후손 21세손 원당(元堂) 거주 동주(東柱)는 족의(族誼)가 타(他)의 귀감(龜鑑)이 될 만한 함으로 첨록(添錄)한다. 종손(宗孫)은 22세손 해완(海院)이니 수곡면 원당(元堂)에 살고 문중(門中)대표는 경주(庚鑄)이며 합동중기사(合同重機社) 대표 정덕(正德)은 21세손(世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