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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68. 진양정씨 (晉陽鄭氏) 은열공파 (殷烈公派) 만지 <滿池>   은열공(殷烈公)의 후예 퇴헌(退軒) 휘(諱) 천익(天益)은 강성군(江城君) 문익점(文益漸)의 빙부(聘父)로서 강성군(江城君)이 중국(中國)에서 갖어온 목화(木棉)의 씨앗을 지금의 산청군(山淸君) 단성(丹城) 배양촌(培養村)에서 시배(始培)하는데 성공(成功)하고 직기구류(織機具類)를 개발(開發)하여 우리나라 의류산업(衣類産業)에 공헌(貢獻)한 공로(功勞)로 진양군(晋陽君)에 봉(封)하여 순조(純祖) 때 진주마동(晋州馬洞)에 청계서원(淸溪書院)을 세워 향사(享祀)하여오다가 대원군(大院君) 집정시(執政時) 철거(撤去)된 후 오늘날은 진주성지(晋州城址)안에 경덕사(景德祠)를 세워 정부의 문화재(文化財)로 지정(指定)받아 제사 지내고 봉남서원(鳳南書院)에 유적(遺蹟)을 모시고 있다.   퇴헌(退軒)의 24세손(世孫) 환일(煥一)이가 1894년에 입곤명(入昆明)하였다. 그는 호(號)가 송헌(松軒)으로 의협심(義俠心)이 강하고 불의(不義)에 못 참으로 서민보호(庶民保護)에 앞장서는 성품으로 1894년 갑오란(甲午亂)때에는 탐관오리(貪官汚吏)의 비위(非違)를 규탄(糾彈)하는데 주도적(主導的) 역할을 하다가 진주송정(晋州松亭)에서 곤명(昆明) 은사동(隱士洞)으로 은거(隱居)하다가 만지(滿池)에 거주(居住)하면서 1914년에는 당시 곤양군수 민모(閔某)의 국유지(國有地) 중복매각획책(重複賣却劃策)에 의분(義憤)으로 직소(直疏) 탄핵(彈劾)하여 민군수(閔郡守)를 파직(罷職)케 하여 서민대중(庶民大衆)의 보호에 앞장 선바 있다.   환일(煥一)로부터 5세손(世孫)까지 대(代)를 이어 거주(居住)하고 있다.   환일(煥一)의 손(孫) 주봉(周奉)은 광복후(光復後)의 격동기(激動期)에 곤명면장(昆明面長)을 역임(歷任)한 바 있으며 그 당시의 어려운 생활상황(生活狀況)하의 불우한 자의 지원(支援)에 솔선 수범해서 선구(先驅) 역할(力割)을 한바이며 당시의 극심(極甚)한 사회혼란(社會混亂)에 면민(面民) 화합운동(和合運動)을 제창(提唱)하여 많은 호응(呼應)을 받은바 있고 공익사업(公益事業)에 진력(盡力)한바 크다.   입곤명(入昆明) 후손은 17호(戶)이나 신흥(新興) 거주는 3호(戶)이고 그 외는 서울 부산(釜山)에 살고 있다.   종손(宗孫)은 만지에 거주하는 계룡(桂龍)이며, 동아자동차 총무이사 태영(泰永)과 건국대학교 교무처장 문영(文永)은 32세 손이다. 註) 高麗史 卷之 121 文益漸晋州江城縣人恭愍王朝登弟累遷正言奉仕始元因留附德興君及德興敗乃還得本棉種歸屬 其舅鄭天益種之初不曉培養之術幾稿止一莖在比三年遂大蕃其取子車緇絲車皆天益創之(以下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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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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