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진주강씨(晋州姜氏) 박사공파(博士公派) 연평<蓮坪> 시조(始祖) 휘(諱) 이식(以式)의 후손(後孫) 계용(啓庸)은 고려(高麗) 원종조(元宗朝)의 국자박사(國子博士)이니 박사공파(博士公派) 파조(派祖)로서 1세(世)로 하여 세보(世譜)를 함이다. 3세(世) 사첨(師瞻)은 고려(高麗) 충렬왕조(忠烈王朝)때 감찰어사(監察御使)이니 이때부터 어사공파(御史公派)로 호칭(呼稱)케 됨이라 한다. 7세손(世孫) 회백(淮伯)은 호(號)가 통정(通亭)이니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과 함께 등조(登朝)하여 그 치적(治績)이 여사(麗史) 명신전(名臣傳)에 수록(收錄)되어 있다. 고려가 망한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선훈(先訓)에 따라 가문(家門)은 낙남(落南)하여 진주(晋州)에 살다가 18세손(世孫) 수(洙)가 삼정(三亭)으로 입주(入住)하였다가 20세손 필태(必泰)가 연평(蓮坪)으로 이주(移住)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관(冠)이 27세손에 이르니 10대(代)가 곤명(昆明)에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입곤명(入昆明) 손세(孫勢)가 30호(戶)에 달(達)하나 곤명(昆明)에는 2호(戶)뿐이고 그 외는 진주(晋州) 부산(釜山)에 거주한다. 종손(宗孫)은 26세손 희중(熙中)이며 문중(門中) 대표는 교육가인 삼중(三中)이다. 향리(鄕里)의 종사(宗事)는 25세손 도홍(道洪)이 맡고 있으며 중앙대학(中央大學)교수(敎授) 호수(鎬洙)는 27세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