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양루(大陽樓) 다솔사(多率寺) 대웅전(大雄殿) 앞에 세워진 누각(樓閣)이니, 건평이 130평이다. 2층(層)으로 지어진 목조건물(木造建物)로 하층은 창고용(倉庫用)으로 쓰고 상층(上層)은 승려(僧侶)의 교육(敎育) 및 신도(信徒)의 집회용(集會用)으로 사용(使用)되었다 한다. 해방전(解放前)에는 민족(民族) 교육도장(敎育道場)으로 쓰여 졌고 해방후(解放後)에는 좌우익(左右翼)의 혼탁(混濁)한 사회질서(社會秩序)를 잡기 위하여 최범술(崔凡述) 주도(主導)로서 청년교육장(靑年敎育場)이 된 때도 있었다. 6. 25 때는 서울에서 피란(避難)온 동흥(東興) 중학교가 이곳으로 옮겨 교실(敎室)로서 4년간 활용(活用)한 바 있어 지역교육향상(地域敎育向上)에 이바지 함이 크다. 임진왜란시(1591) 병화(兵火)로 다솔사와 함께 대양루(大陽樓)도 소실(燒失) 되었고 영조(英祖) 34년 (1758)에 월징(越徵) 일진(一眞) 일휘(日輝)등 스님이 중건(重建) 하였음이 [다솔사(多率寺) 명부전(冥府殿) 대양루(大陽樓) 사왕문(四王門) 중건기(重建記)]에 수록(收錄)되어 있으니 230년의 연륜(年輪)을 가진 셈이다. 1974. 2. 26 지방문화재(地方文化財) 83호로 지정되어 86년에 5천만원의 재정(財政) 지원으로 도괴(倒壞)의 위기에서 보수(補修)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