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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33. 성곡당기(城谷堂記)   성곡당(城谷堂)은 곤양부성방리(昆陽府城方里)에 있다. 북쪽에 지리산(智異山)이 있고 그 일지(一枝)가 동출(東出)하여 산세(山勢)가 영회(縈廻)하며 기봉(奇峰)을 지어 용(龍)이 누웠는 것 같은자(者) 즉 와룡산(臥龍山)이고 앞으로 남해(南海)를 향(向)하였으니 그 광활(廣濶)한 장관(壯觀)은 말로써 다하지 못하고 서(書)로써 기록(記錄)하기 어렵도다. 재석(在昔)에 성곡박공(城谷朴公)이 정벽(靜僻)한 땅을 택(擇)하여 수간서숙(數間書塾)을 구축(構築)하고 이름을 성곡당(城谷堂)이라 하니 어찌 성곡(城谷)이라 하였는고 성방리(城方里)의 성(城)자와 동(洞)이 장곡(長谷)이기 때문에 곡(谷)자를 취(取)하여 성곡(城谷)이라하고 인(因)하여 호(號)까지 하였다. 자질내예(子姪來裔)로 더불어 이에서 강학(講學)하여 배움에 부지런하고 근본(根本)에 힘쓰고 일기화창(日氣和暢)하면 원근사우(遠近士友)로 이에 회유(會游)하여 구경하고 읊(咏)고 돌아오면 어찌 전현(前賢)들의 영귀(咏歸)에 승(勝)하지 아니하리요.   오(噫)라 당(堂)이 차지(此地)에 있는지가 기구(己久)인데 루경병화(屢經兵火)하고 비(雨)로 씻기고 바람에 맞아 당우(堂宇)가 퇴패(頹敗)하니 풍일(風日)이 불예(不翳)하고 산수(山水)가 적막(寂莫)하니 후예(後裔)의 마음이 어찌 창한(悵恨)치 아니하며 사자(士子)의 론(論)이 없을손가 이에 족질봉섭(族姪鳳燮)과 재관(在觀)이 선인(先人)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제족(諸族)과 같이 합심협력(合心協力)하여 선두(先頭)에 나서 지휘(指揮)하여 중건(重建)을 완성(完成)하니 당(堂)의 면모(面貌)가 익연(翼然)히 다시 전(傳)하게 되니 전일(前日) 광경(光景)보다 백배(百倍)나 더하는도다. 자차이후(自此以後)로 문학(文學)이 중흥(中興)하고 산수(山水)가 중신(重新)하리니 제제후손(薺夕後孫)이 사이집지(嗣而輯之)하고 명기당호(銘其堂號)하며 소기진애(掃其塵埃)하며 영보차당(永保此堂)이면 헌미지장(軒楣之壯)이 여시이불입부미(如是而不入浮靡)하여 일향(一鄕)의 사림(士林)이 흠앙(欽仰)하여 칭(稱)하지 아니하리요 성방리(城方里)의 장곡(長谷)이 당(堂)으로 더불어 또한 다(盡)하지 아니 함이라.   1987년 정묘국화절(丁卯菊花節)   방종병기근기(傍宗秉輪謹記)

성 곡 당 기 성곡당재곤양부성방리북유지리산기일지동출산세영회작기봉이여룡와자즉와룡산전향남해기 광활장관이언불진이서난기야석재성곡박공휘명춘택기정벽지지구수문서숙명왈성곡당하위성 곡야취성방리지성자여동장곡고곡자이합위성곡인이위호언여자질래예강학우사근학무본일기 화창칙원근사우회유어차상영이귀기불승전현지영귀재희당지류차지자이구이루경병화우세풍 타당우퇴패풍일불예산수적막후예지심기불창한사자지론기왈무위어시언족질봉섭재관봉선인 지유지여제족합심협력지휘이기성중건당지안익연복전백배전일광경의자차이후문학중흥산수 중신제제후손사이집지명기당호소기진애영보차당헌미지장여시이불입부미일향지사림숙불흠 앙이칭지야성방리지장곡여당역무진야 일구팔칠 년 정묘 국화절 방종 병 륜 근기 城 谷 堂 記 城谷堂在昆陽府城方里北有智里山其一枝東出山勢縈廻作奇峰而如龍臥者卽臥龍山前向南海其 廣濶莊觀以言不盡以書難記也昔在城谷朴公諱明春擇其靜僻之地搆數聞書塾名曰城谷堂何謂城 谷也取城方里之城字與洞長谷故谷字而合爲城谷因以爲號焉與子侄來裔講學于斯勤學務本日氣 和暢則遠近士友會遊於此賞詠而歸豈不勝前賢之詠歸哉噫堂之留此地者已久而屢經兵火雨洗風 打堂宇頹敗風日不翳山水寂寞後裔之心豈不悵恨士子之論豈曰無爲於是焉族侄鳳燮在觀奉先人 之遺志與諸族合心協力指揮而旣成重建堂之顔翼然復傳百倍前日光景矣自此以後文學重興山水 重新濟濟後孫嗣而輯之銘其堂號掃其塵埃永保此堂軒楣之壯如是而不入浮靡一鄕之士林孰不欽 仰而稱之耶城方里之長谷與堂亦無盡也 一九八七 年 丁卯 菊花節 傍宗 秉 輪 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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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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