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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25. 저존재기(著存齋記)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효자(孝子)가 제사(祭祀)함에 가로되 애친(愛親)함이 지극(至極)한즉 계신 듯 하고(存) 경친(敬親)의 정성(精誠)이 지극한즉 나타나는 듯(著)하며 나타남과 계신 듯(著存) 함은 마음에 잊지(不忘) 아니 하거니 이로써 어버이를 제사(祭祀)하고 사당에 제사함을 말함이라 어버이 제사함이 이와 같은즉 어버이 마음 가짐을 미루어 제사하는 그 유래된 바가 또한 이와 같으니라.   사당의 제사함도 이러한즉 궁구컨대 들판에 체백(體魄)이 묻힌 무덤에 이르러 제사함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제사를 함에 저존(著存)에 이르지 아니하면 어찌 제사라 하리오. 곤양(昆陽)고을 남쪽 송비산(松飛山)에 좋은 묘 자리가 있으니 차례로 무덤을 이루니 곧 하양현감(河陽縣監)을 지낸 강공(姜公) 인보(仁輔)의 묘(墓)이고 그의 자(子) 만송처사(晩松處士) 염(濂)이며 염(濂)의 자(子) 송은(松隱) 익주(翊周)이며 통정이주(通政以周)이다. 송은(松隱)의 자(子) 현(玹)과 림(琳)도 옆에 장사하였다.

  그 자손이 가까이 세거(世居)하며 우러러 사모하며 살펴서 돌보아 때때로 삼가 이제사를 드림이 수백년(數百年)으로 끊어지지 아니하고 같이 모여 제사하였다. 몸을 목욕하여 정결히 재계할 집이 없어 재전(財錢)을 모우고 재목(齋室)을 모아 힘을 다하여 산하(山下)에 재실(齋室)을 지어 저존(著存)이라 편액(扁額)하고 규환(奎煥) 주섭(冑燮) 두사람을 다산(茶山)의 산협(山峽)까지 보내 나에게 기문(記文)을 청(請)하거늘 내가 말하기를 강씨(姜氏)가 추원(追遠)하여 근본에 보답함이 게으르지 아니하고 근심함이 이와같은 즉 그 애친(愛親)함과 경친(敬親)함이 지극(至極)하여 재계(齋戒)를 밝게하며 정성(精誠)껏 제사(祭祀)하는 절도(節度)가 떳떳하며 저존(著存)의 격식(格式)에 흠(欠)됨이 없으니 내 또한 무슨 말을 이에 더할까부냐. 다시 말하자면 아들이 어버이를 몸소 섬김에 그 용색(容色)이 눈(目)에 있고 음성(音聲)이 귀(耳)에 있고 하고져 하는 뜻은 내 마음으로 지극(至極)히 잊지 아니함이 재계(齋戒)를 나타냄이라 조상(祖上)이 멀고 먼즉 소리와 얼굴과 기동하는 것과 이목(耳目)을 대(對)하지 아니하여 비록 잊어버리지 아니하고져 하나 가히 좀 잊어버린 것과 방불하지 아니할까부냐. 오직 행적(行蹟)을 오래 무너뜨리지 아니하고 이에 전함은 조선(祖先)의 마음을 존양(存養)하는 행사(行事)이다. 이를 잊지아니한즉 장차 내가 조석(朝夕)으로 기동(起動)하며 한번 일컬으고 생각함을 때때로 마지 아니하면 선인(先人)이 옆에 계신 듯 함이라 어찌 반드시 재실(齋室)에 들려 정결히 하고 무덤에 올라 꿇어 절한 연후에야 저존(著存)함을 기다릴까 부냐. 이제 강씨(姜氏)는 잊어버리지 아니함이 하양현감(河陽縣監)이 관(官)에 계실적에 청렴결백함과 만송공(晩松公) 선비의 공경(恭敬)함을 밝혀 수신(修身)함과 송은(松隱)의 학문(學文)과 행실(行實)의 고상(高尙)함이며 더불어 그 동생과 아들들을 세정(世情)을 개탄하여 나라의 부름에 나가지 아니하고 임천(林泉)에 은둔하였다.   상상컨대 공경하고 사모함은 이어 닦음을 간절히 바라봄에 미친즉(及) 그 업적을 이어 받드니 장차 잊어 버리고져 함이 있을지라도 가히 잊어버리지 아니할 것이다. 대개 이와같은즉 재실(齋室)을 저존(著存)이라 함이 보람이 더할것이다. 강씨(姜氏) 제군자(諸君子)는 어찌 이에 힘쓰지 아니하리요.   강씨(姜氏)는 진양(晋陽)의 대족(大族)이라 고려명신(高麗名臣) 은열공(殷烈公) 민첨(民瞻)의 후(后)이니 하양(河陽)에서 곤양(昆陽)으로 이거(移居)하였다.   경술(庚戌) 1910년 3월 10일   포산(苞山) 곽 종석( 郭鍾錫 )기

저 존 재 기 기지칭효자지제야왈치애칙존치각칙저저존불망호심차이제친제묘이언야제어친여차칙추친지 심이제기소자출역유시야제우묘여차칙추이지어원야체백지장기제역유시야제언이불격우저존 하사어제야곤남지송비산유명당길천질연부옥지성행자즉고하양현후강공인보지묘이기자만송 처사렴렴지자송은익주통정이주송은지자왈현왈림병종이부기자손세거밀이첨모성소세시유근 향화지천흘수백재불체함이위기취이제의불용무벽탁재명지소급연자모재갈력부사위재어산지 지편왈저존차서주규환주섭이군우다산지협징여이소기미자여위강씨지추원이보본야기하해이 유근여시칙기치애치각어제불관천지절자고기응무감어저존지격의여우하언지가언억유복위자 지어친야신사지의기색재목기언재이기심지기욕재오심가이치불은 지실이필견기소위제자야 자조이상원이유원칙성모기식이목지소불접야수욕불은기가이방불만일야유전지불괴구이가적 자조선지심법행사야즉차이불망언칙장오지조모기거일운일위무왕이비선인지재좌우상하의기 필대입재이결견등롱이배궤연후시왈저존호재금위강씨자역유불망어현후지거관청신만송자지명 성실수송은지문행고도여기계윤공지개의풍천불취징배자이상상흠모종술이기급지칙기갱우장위기 위표장유욕망이불가망자의부여시사재지위저존야익험의강씨제군자합어차가면언강씨진양대벌 야고려명신은열공민첨지후기사우곤자하양시야 세경술춘삼월 상완 포산 곽 종 석 기 著 存 齋 記 記之稱孝子之祭也曰致愛則存致慤則著著存不忘乎心此以祭親祭廟而言也祭於親如此則推親之 心而祭其所自出亦猶是也祭于廟如此則推而至於原野體魄之藏其祭亦猶是也祭焉而不格于著存 何事於祭也昆南之松飛山有明堂吉阡秩然斧屋之成行者卽故河陽縣候姜公仁輔之墓而其子晩松 處士濂濂之子松隱翊周通政以周松隱之子曰玹曰琳並從而祔其子孫世居密邇瞻慕省掃歲時惟謹 香火之薦迄數百載不替咸以爲旣聚而祭矣不容無湢濯齋明之所及捐貲募材竭力赴事爲齋於山之 趾扁曰著存且書走奎煥冑燮二君于茶山之峽徵余以䟽其楣者余謂姜氏之追遠而報本也其下懈而 愈勤如是則其致愛致慤於齊祓灌薦之節者固己應無憾於著存之格矣余又何言之加焉抑有復爲子 之於親也身事之矣其色在目其言在耳其心志嗜欲在吾心可以致不恩 之實而必見其所爲齊者也 自祖而上遠而愈遠則聲貌氣息耳目之所不接也雖欲不恩其可以髣髴萬一耶唯傳之不壞久而可蹟 者祖先之心法行事也卽此而不忘焉則將吾之朝暮起居一云一爲無往而非先人之在左右上下矣豈 必待入齋而潔蠲登壠而拜跪然後始曰著存乎哉今爲姜氏者亦唯不忘於縣候之居官淸愼晩松子之明 誠實修松隱之文行高蹈與其季胤公之愾意風泉不就徵拜者而想像欽慕踵述而跂及之則其羹于墻爲箕 爲表將有欲忘而不可忘者矣夫如是斯齋之爲著存也益驗矣姜氏諸君子盍於此加勉焉姜氏晋陽大閥 也高麗名臣殷烈公民瞻之後其徙于昆自河陽始也 歲庚戌春三月 上浣 苞山 郭 鍾 錫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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