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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면지

23. 은구재기(隱求齋記)   선비로서 세상에 뜻이 부합하지 않을때는 은거(隱居)할 따름인데 구차스럽게 나의 몸만 깨끗이 지닐려고 은거(隱居) 하는것은 아니다. 반드시 구(求)하는 바의 뜻이 있으며 그 구하는 바의 뜻이란, 세상에 나갔을때에 행(行)하는 도(道)를 말한다. 은거(隱居)하는 것과 세상에 나가는 것이 비록 길은 다르다고 하지만 구(求)하는 뜻과 행(行)하는 도(道)는 둘이 아닌 것이다.   은거(隱居)하면서 구한 바의 뜻이 없으면, 세상에 나가서도 행(行) 할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君子)는 자신(自身)이 은거(隱居)하고 있는데는 구애받지 않고 그 뜻을 구하지 못함을 걱정하는 것이다. 뜻이 구하여지면 세상에 행(行)할 수 있는 기구가 나에게 있으므로 비록 행(行)하지 못하더라도 행(行)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성인(聖人)의 은거(隱居)하여 뜻을 구하는 교훈(敎訓)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세상을 도망하여도 민망하게 생각지 않으며 세상에 버림 받아도 원망을 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에 그렇다.

  구 곤양(舊昆陽)의 북쪽에 위치한 은사동(隱士洞)에는 나의 벗인 유암(有菴) 이경신(李敬信)이 그곳에 은거(隱居)하여 강학(講學)을 하고있다. 문도(門徒)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 지방(地方)의 진비(晋鄙)의 훈(薰)1)이 있게되니 사람들은 은거(隱居)하여 있는 사람과 은사(隱士)라는 지명(地名)이 상우(相遇)하였다고 말하였다. 왕년(往年)에 모든 종학자(從學者)들이 거처가 너무 좁은 것을 근심하여 마을 부근에 서재를 촉조(築造)하여 거처하게 되었느니라. 유암(有菴)이 서재의 이름을 은구(隱求)라 하고 유암(有菴)의 종자(從子)인 인섭(仁燮)이 강군(姜君) 달수(達秀)지를 배종하여 나의 고을인 유계(柳溪)를 찾아와서 그 사실을 말하면서 기문(記文)을 청(請)하였다. 나와 유암(有菴)은 사귄지가 二十여년이다. 비록 산천(山川)이 격저(膈阻)하여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서로가 기약한 뜻은 진실로 동일(同一)하며 은사동(隱士洞)에 아직 한번 가보지는 못했지만 매양 그 이름을 듣고 마음속으로 동경(憧憬)하여 왔다. 지금 이 은구재(隱求齋)와 은사동(隱士洞)에 대하여 거듭되는 소감(所感)과 함게 한마디 말을 해보려 한다.   고금(顧今)에 천지(天地)가 폐색(閉塞)3)함이 극(極)에 달(達)하였으니 현인(賢人)이   註)   1) 晋鄙의 薰 : 唐나라 諫議大夫 楊城이 晋나라 鄙땅에 있을 때 鄙땅 사람들이 모두 楊城의 德에 교화訓育 되었다 함.   韓退之 爭臣論. [晋之鄙人 薰其德]   2) 姜達秀 : 有菴門人으로 號 忍石 初代制憲國會議員을 지냄.   3) 天地閉塞 : 天地가 閉하면 賢人이 은둔한다. 卽 세상이 요란 할 때는 賢人이 숨는다는 뜻.   周易上經 [天地閉 賢人隱]

  은거(隱居)하는 것은 진실(眞實)로 당연(當然)한 시기(時期)이며 뜻 구(求)하기를 더욱 마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뜻을 알고 이렇게 하는 사람은 그리 흔하질 않다.   유암(有菴)은 돈후(敦厚)하고 독실(篤實)한 자질(資質)로서 일찍이 구산선생(臼山先生)4) 문하(門下)에 집지(執贄)하였고, 그 지결(旨訣)5)을 깊이 마음에 새겨 신심성명(身心性命)의 학(學)에 독실(篤實)히 매진(邁進)하고 교유향배(喬幽向背)6)한 뜻에 긍긍(兢兢)하여 백발(白髮)이 성성한 지금에도 더욱 마음을 가다듬어 게을리함이 없이 부지런히 뜻을 구(求)하고 있다. 비록 세상에 나가서 행(行)하는 것은 금세(今世)에 바랄 바는 없으나 은연(隱然)히 궁천(窮泉)의 한 맥을 구야한위(九野寒威)7)한 가운데서 붙들어 칠일(七日)의 내복(來復)8)을 터하는 것이 비로소 여기에 있으니 오늘의 구지(求志)하는 자가 고인(古人)의 구지(求志)하는 것보다 그 마음이 더욱 슬프고 그 소임이 더욱 무겁지 않겠는가?   이것이 유암(有菴)의 자면(自勉)하는 뜻이며, 이 서재(書齋)를 축조(築造)함은   註)   4) 臼山先生 : 田愚(憲宗 7年 1841-1922) 字는 子明이오 號는 民齋, 臼山은 別號이며 本貫은 潭陽이다. 당시의 巨儒 申應朝의 권유로 性理學 연구에 전념, 任憲晦門下에서 20年間 학문을 닦아 尹致中 . 徐延淳과 함께 그의 高弟가 되었다 1899(高宗19년) 遺逸로 천거되어 繕工監 監役이 되고 그후 江原道都事, 掌令, 順興付使, 中樞阮賛議등에 任命되었으나 모두 사양했다. 晩年에 全羅道 界火鳥에서 後學을 가르쳤다.   5) 旨訣 : 民齋先生은 性命學과 華弟論을 宗旨로 삼았음.   6) 喬幽向背 : 幽谷에서 나와 喬本으로 옮기는 뜻으로 孟子에 나옴. 즉 幽谷은 弟이며 喬本은 華로서 華夷를 말하며 西歐思潮인 弟를 등(背)지고 五道인 華를 숭상(向)한다는 뜻.   7) 九野寒威 : 추운 위엄이 온 세상을 덮었어도 陽脉을 窮泉에서 밝혀온다는 失子詩. [寒威九野閉 陽德昭窮泉] 즉 세상이 혼란하여 道가 없어도 한 맥을 붙들어 뒷 세상에 傳한다는 뜻.   8)七日來復 : 剝卦는 一陽이 五陰 위에 있는 것으로서, 陰이 커져서 陽이 없으지려는 모양이며 復卦는 一陽이 五陰밑에 있는 것으로서 陽이 커져 가는모양 즉 亂世가 治世가 되어 가는 治亂 흥망의 理致를 일컫는 말로서 사물과 人事의 변화가 七日을 周期로 한다.   周易復卦 [反復其道 七日來復]   또한 한 지방(地方)의 흠모(欽慕)에서 비롯한 것인즉 자못 박상(剝上)의 득여(得輿)9)한 상(象)이라고 말할 수 있고 유암(有菴)을 위(爲)하여 하례할 일이다. 이를 연유하여 종학자(從學者)가 더욱 늘어나서 사람마다 양(陽)이 다하지 않는 이치를 알고 은구(隱求)라는 참뜻을 궁구한다면 은구(隱求)라는 이름은 한때의 흠모에 의해 이루어 진 것에 그치지 않고 영원(永遠)히 그 학풍(學風)이 전(傳)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 지방의 경사이고 또한 사림(士林)의 경사이다. 나는 이로써 기다린다.   만약 산림운물(山林雲物)이 은구(隱求)의 락(樂)을 제공하는 것은 그것은 다른날 은구재(隱求齋)에 한번 올라가 보고 읊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계모(癸卯 : 1963) 대한절에 화산 권용현   註)   9) 剝上得輿 : 剝卦는 世上의 道가 없는 때이다 亂世에 뭇을 얻었다는 뜻 周易 剝卦上九에 ‘君子得輿’

은 구 재 기 사이불우어시칙은언이기은비구연위결신계야필유소구지지언지자하야달이위가행지도야은여 달수이도이지여도비이규무소구어은자필장무소행어달야고군자불환기신지은이환기지지불구 지구구의칙가행지구재아수불행이유행야차성인소이유은거구지지훈이군자둔세불민유일불원 개이차야구곤양지북유왈은사동우인유암자이경신은거강학어차종이청업자중유진비지훈인칭 인여지상우왕년제종학자우소거벽애별축일재리방이처지유암위지편은구이기종자인섭종강군 달수방여어류계술기사청이기여여유암교여이십년수격이천원회오지미수제야기상기지지칙고 무간야수미득일지어기소위은사동자이매문기명이심여지회의금어시재이시명안득불중유감이 사위지일언고금천지지폐색기극의현인지은고기시야이구지지우불가이기야연능지차의이사사 자개과의유암이돈후독실지자조등구산선생지문복응기지결이조제어신심성명지학긍제어교유 향배지의자지금로구수익려불해칙기어소위구지가위근의수기달이가행무소망어금세이은연부 궁천지일맥어구야한위지중이기칠일지복자말시불재차칙금지구지자관고인지구기심불우척이기임불우중 야차개유암자면지의이시축야우출어일방지향모칙태가위유득어박상득여지상의시가위유암하야 구유차이신종자익중인개지양무가진지리이종사어은구지실칙시편야불단위일시모이기풍지소 급자달의시칙우가위일방하야위오당하야오차이시사지약기산임운물족이공은구지락자제대이 일일등이부지미만야 계묘 대한절 화산 권 용 현 隱 求 齋 記 士而不偶於時則隱焉而己隱非苟然爲潔身計也必有所求之志焉志者何也達而爲可行之道也隱與 達雖異途而志與道非二揆無所求於隱者必將無所行於達也故君子不患其身之隱而患其志之不求 志苟求矣則可行之具在我雖不行而猶行也此聖人所以有隱居求志之訓而君子遯世不悶遺佚不怨 皆以此也舊昆陽之北有曰隱士洞友人有菴子李敬新隱居講學於此從而請業者衆有晋鄙之薰人稱 人與地相遇往年諸從學者憂所居湢隘別築一齋里旁以處之有菴爲之扁隱求而其從子仁燮從姜君 達秀訪余於柳溪述其事請以記余與有菴交餘二十年雖隔以川原會晤之未數々也其相期之志則固 無間也雖未得一至於其所謂隱士洞者而每聞其名而心與之會矣今於是齋而是名安得不重有感而 思爲之一言顧今天地之閉塞己極矣賢人之隱固其時也而求志之尤不可以己也然能知此義而事斯 者盖寡矣有菴以敦厚篤實之資早登臼山先生之門服膺其旨訣而慥々於身心性命之學兢々於喬幽 向背之義者至今老臼首益勵不懈則其於所謂求志可謂勤矣雖其達而可行無所望於今世而隱然扶 窮泉之一脉於九野寒威之中以基七日之復者末始不在此則今之求之者觀古人之求其心不尤戚而其任不尤重 耶此盖有菴自勉之意而是築也又出於一方之嚮慕則殆可謂有得於剝上得輿之象矣是可爲有菴賀也 苟由此而信從者益衆人皆知陽無可盡之理而從事於隱求之實則是扁也不但爲一時謀而其風之所 及者達矣是則又可爲一方賀也爲吾黨賀也吾且以是俟之若其山林雲物足以供隱求之樂者第待異 日一登而賦之未晩也 癸卯 大寒節 花山 權 龍 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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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3 1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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