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명면지



곤명면지

20. 우우정기(友于亭記)   사람이 항상(恒常) 말하기를 효우(孝友)가 인(仁)의 본(本)이 되고 인(仁)이 효우(孝友)의 본(本)이 됨을 알지 못한다. 하였으니 대개 사람의 대륜(大倫)이 부자(父子)와 형제(兄弟)에 있어 효(孝)하고 우(友)하는 마음이 애연(藹然)히 자애(慈愛)의 인(仁)에서 발생(發生)하에 있는것이니 천성(天性)이 그러 하기 때문이지 구태어 만들어 하는 것이 아니다.   인인(仁人)이 있은 뒤에 가(可)히 부모(父母)에 효(孝)하고 형제(兄弟)에 우(友)하는 것이니 불인(不仁)한 사람은 효우(孝友)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형제(兄弟)가 이(利)를 다투어 원수같이 대(對)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런 사람은 효우(孝友)를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仁)한 자(者)가 있은 후에 효우(孝友)가 있다는 것이다.

  나의 삼종형(三從兄) 남재공(南齋公) 형제(兄弟)의 우애(友愛)는 반드시 자기가 갖고 있는 타고난 천성의 병이(秉彛)와 호덕(好德)에 근본(根本)하여 베풀어 짐이니 이를 인인(仁人)이라 함이니라.   공(公)이 문학(文學)과 효우(孝友)로서 중망(重望)이 어릴적 부터 있었다.   공(公)의 아우 휘(諱) 성래(聖來)씨 선원(璿源)에 계출(系出)하여 그의 형(兄) 남재공(南齋公)과 더부러 우애(友愛)와 의양(義讓)에 돋독(敦篤)하여 형제(兄弟)가 서로를 섬겨 마치 부자(父子)와 같아서 좌식진퇴(坐食進退)에 남재공(南齋公)이 명(命)하지 않으면 감(敢)히 하지 않았으며 출입에 불을 밝혀 기다리며 분거(分居)하여 살림을 따로 함에 다과(多寡)를 불문(不問)하고 전토(田土)의 척박(瘠薄)한 땅은 근력(勤力)하여 기름지게 만들어 농사(農事)를 지었으며 형(兄)의 농작(農作)도 내것과 다름없이 힘써 지었다.   매양(每樣) 아침 일찍 청당(廳堂)에 모여 가사(家事)의 크고 작은일에 이르기까지 물어서 정하였다. 그리고 하나의 전포(錢布)라도 사장(私藏)하는 일이 없었다.   고용등속(雇傭等屬)들은 그들이 책임(責任)을 저서 농작(農作)에 조금도 때를 놓치는 일이 없이 오로지 본분을 다하게 하였다. 또 족척(族戚)의 경조(慶吊)에는 애목(愛睦)을 더하였고 평소 티끌 만치도 사리(私利)의 마음없이 근검절약(勤儉節約)하여 자봉(自奉)은 심(甚)히 박(薄)하게 하고 형(兄)에게는 후(厚)하게 받들었음은 우애(友愛)의 도(道)에 천성(天性)이 그러하였느니라.   일찍이 수간(數間)의 정자(亭子)를 유벽(幽僻)한 곳에 이루어 형제(兄弟)가 같이 이열(怡悅)의 뜻을 펴고자 하였으나 정자(亭子)를 이루지 못하고 한해에 형제(兄弟)가 다 돌아 가시니 ?으다 하늘이 어찌 공(公)으로 하여금 그 후(厚)를 놓계(施) 하고 그 수(壽)를 인색케 하였는고?   그뒤 삼십여년(三十餘年)간에 세상(世上)이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변천(變遷)하여 풍조(風潮)에 몰리어 동분서주(東奔西走)하다가 정자(亭子)를 이루지 못하니 자손(子孫)의 도리(道理)에 지금(至今) 한탄(恨嘆)할 일이다. 하루날에 필구(弼九)가 나에게 와서 말하기를 나의 선부군(先府君) 형제(兄弟)가 우독(友篤)하신 것은 숙주(叔主)가 친(親)히 보신 바이고 이제 숙주(叔主) 또한 늙었으니 백세(百歲)뒤에 누구가 능(能)히 징신(徵信)하리오 우리 형제(兄弟)와 여서(女婿) 민명조(閔明祚)와 정용시(鄭龍時), 황주홍(黃主興), 황병기(黃炳琪)가 다 힘을 내여 계(契)를 꾸며 정자(亭子)를 소거(所居) 우록(右麓)에 이루어 우우정(友于亭)이라 이름하고 원(願)하건데 한말로 공(公)의 형제(兄弟) 상호(相好)의 의(誼)로써 기록(記錄)하여 내후(來後)에 민몰(泯沒)함이 없고저 한다 하기에 나 또한 말하기를 어허 공(公)의 형제(兄弟) 우애 (右愛)가 돈독(敦篤)함은 비록 옛 인인군자(仁人君子)라도 이에 더할 이 없고 정자(亭子)를 이룸이 늦었으니 빨리 이룩하여 군종(群從)과 형제자매(兄弟姉妹)로 더불어 이이(怡怡)히 즐거움을 한즉 가성(家聲)을 떨어 트릴리(理) 없을것이니 힘 쓸 지어다. 본말(本末)을 약서(略叙)하여 기(記)하니라.   세(歲) 갑오(甲午:1954) 수하(首夏:4월)   삼종제(三從弟) 덕래(德來) 기(記)

우 우 정 기 인유항언효우위인지본이불지이인위효우지본개인지대륜유부자형제이기위우지심애연발생어 자애지인본어천성이연비면강작위고유인인이후가이효어부모우어형제불인지인불지효우지위 하사이형제쟁이지약구적차인불가이어효우의유인자이후가이당지여오삼종형남재공형제지우 우필본어병이호덕지재아이발칙위지인인가야공이문학효우소유중망공지제휘성래씨계출선고 여기형남재공우애심독병돈의양곤계상사유여부자좌식진퇴남재공불명칙불감야출입칙대이거 화분거이산불문다과전토지척박아당위근이력농위업형지농작시동이작매조조취어청당가사거 세일이자결일전척포불입사장고용등속전책기임범어농작소불실시족척경적우가애목무분호사 이지심근검절약자봉심박이필후어형기우애지도고천성야상욕구수간정자어유벽처여형제공성 이열지지이말취이병몰일세희천호사공시기후이색기수야후삼십여년간세변창상위풍조소구동 분서주미급구정위자손지도지금탄한일일필구래여왈오선부군형제상우지독숙주소공친견자이 금숙역년로의백세지후수능징신오형제여여서민명조정용시황주흥황병기병출력수계이구정어 소거우록명지이우간원기일언이공형제상호지의무사민몰어래후여왈오호공지형제우애지독수 고인인군자무과어차이정지성역만의원속구성거군종급형제자매공작이이지락칙서불추어가성 면지재략서본말이위기 세갑오수하 삼종제 덕 래 기 友 于 亭 記 人有恒言孝友爲仁之本而不知以仁爲孝友之本盖人之大倫有父子兄弟而其爲友之心藹然發生於 慈愛之仁本於天性而然非勉彊作爲故有仁人而後可以孝於父母友於兄弟不仁之人不知孝友之爲 何事而兄弟爭利至若仇敵此人不可以語孝友矣有仁者而後可以當之如吾三從兄南齋公兄弟之友 于必本於秉彝好德之在我而發則謂之仁人可也公以文學孝友少有重望公之弟諱聖來氏系出璿泒 與其兄南齋公友愛甚篤幷敦義讓昆季相事有如父子坐食進退南齋公不命則不敢也出入則待以擧 火分居異産不問多寡田土之瘠薄我當爲勤以力農爲業兄之農作視同已作每早朝聚於廳堂家事巨 細一以咨決一錢尺布不入私藏雇傭等屬專責其任凡於農作少不失時族戚慶吊尤加愛睦無分毫私 利之心勤儉節約自奉甚簙而必厚於兄其友愛之道固天性也甞欲搆數間亭子於幽僻處與兄弟共成 怡悅之志而末就而幷歿一歲噫天胡使公施其厚而嗇其壽也後三十餘年間世變滄桑爲風潮所驅東 奔西走未及構亭爲子孫之道至今嘆恨一日弼九來余曰吾先府君兄弟相友之篤叔主所共親見者而 今叔亦年老矣百歲之後誰能徵信吾兄弟與女婿閔明祚鄭龍時黃周興黃炳琪幷出力修契以構亭於 所居右麓名之以友干願記一言以公兄弟相好之誼無使泯沒於來後余曰嗚乎公之兄弟友愛之篤雖 古仁人君子無過於此而亭之成亦晩矣願速構成擧群從及兄弟姉妹共作怡怡之樂則庶不墜於家聲 勉之哉畧叙本末以爲記 歲甲午首夏 三從弟 德 來 記


담당자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만족도 조사 민원신청  시장에게 바란다  조직도  공지사항  공고/고시/시험 
페이지 수정요청열기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