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명면지



곤명면지

16. 영모재기(永慕齋記)   곤양군(昆陽君) 서(西)쪽 20리(里)에 손량(孫梁)마을이 있어 동부(洞府)가 시원하고 깊어 위인(偉人)과 달사(達士)가 거쳐(居處)하여 일세(一世)를 울릴만한 곳이다. 근세(近世)에 통저대부(通政大夫) 하공(河公) 휘필도(諱必圖)이며 자(字) 응서(應瑞)란 분이 살았었다. 공(公)은 침의(沈毅)한 기질(氣質)을 가져 동년(童年)부터 무예(武藝)를 배워 궁(弓) 마(馬) 포(砲) 검(劍)과 행진기정(行陳奇正)의 법(法)을 정성을 다하여 연구(硏究)를 하였다.

  영조(英祖) 무신(戊申)의 난(亂)에 몸소 향병(鄕兵) 200여를 거느리고 거창(居昌)의 성초령(省草嶺)에서 싸워 적(敵)의 괴수(魁首)인 희양(希亮)과 태보(態輔) 숭곤(崇坤) 세규(世奎) 등 17명(名)을 생포(生捕)하여 우(禹) 곤양(昆陽) 하형(夏亨)의 휘하(麾下)에 엮어서(縳) 보내어(送) 참(斬)하게 하니 남방인사(南方人士)로 하여금 안도(安堵)하게 하고 조정(朝廷=九重)이 주야(晝野)의 근심을 풀어주니 그 공(功)이 막중(莫重)하였었다.   왕(王)으로부터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승자(陞資)를 명(命)하시고 분무공신(奮武功臣) 원종일등(原從一等)에 녹(錄)하고 책권(冊卷)을 주시고 칠원(漆原)과 흥해(興海)의 군수(郡守)로 배수(拜受)하였다. 관(官)에 부임하여 치민(治民)함에 궁(窮)한 자를 살리고 병든자를 손질하여 정성을 다하였으며 시폐(時蔽) 십조(十條)를 상소(上疏)하니 그때 정승(相)이 깨달았으나 당의(党議)가 강성(强盛)한지라 사진(仕進)을 싫어하여 채택(採擇)되지 않았고 끝내 귀향하여 적막(寂寞)한 곳에 처(處)하여 날마다 양사(良士)와 더불어 경지(經旨)를 강(講)하며 글이 으뜸이라 일방(一方)의 사문(斯文)에 망모(望慕)되니 이른바 위인달사(偉人達士)가 일세(一世)를 울린 것이 아닌가.   그가 몰(沒)한 뒤 후손(後孫)들이 향화(香火)를 받들기(奉)를 역세(歷世)에 세(衰)하지 않았으나 재숙(齋宿)이 없음을 한(恨) 하였더니 갑인(甲寅) 봄(春)에 종의(宗議)가 있어 공(公)이 강학(講學)하던 유적지(遺蹟地)에 사가오영(四架五楹)을 세우고 영모(永慕)라 편미(扁媚)하고 점생(点生) 병준(秉俊)을 보내어 나에게 기문(記文)을 청(請)하더라.   슬프도다 이제 천하(天下)의 명교(名敎)가 윤상(淪喪)되어 인도(人道)가 거의 종식(終息)되어 자손(子孫)이 사모(思慕)에만 지나지 않게 소홀함에도 오직 하씨(河氏) 제공(諸公)이 수백년(數百年)이 지난 오늘날 이루지 못한 재(齋)를 이룩하였으니 이에 종족(宗族)이 모여 선(先)을 위(衛)하며 후(後)를 격(格)하고 종(宗)을 수(收)하고 족(族)을 철(綴)하게 할 계기를 마련하니 앞으로 게을이 아니하면 보본추원(報本追遠)의 일이 아닐 수 없는 즉 현대의 세속(世俗)과는 멀어지는 아름다운 일이며 이로 인(因)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 공(公)의 뜻을 사모(思慕) 하여 이어지고 공(公)의 일을 사모하면 참으로 추모(追慕)가 클것으로 여겨지며 이 재(齋)도 또한 영존(永存) 할지니라.   갑인(甲寅:1974) 대서절(大暑節)   청천(菁川) 류 원 준( 柳 遠 準) 기

영 모 재 기 곤양현서거이십리유손량리동부실폐림학명려의호위인달사파어기간이명일세야근고통정대부 하공휘필도자응서서기호기인야개공품침의지기자동년종사무예범어궁마포검행진기정지법연 구정해급영묘무신지란친솔향병이백전우거창지성초령미기일생금적괴희량태보숭곤세규등십 칠명전치우우곤양하형마하이참지사남방인사득보안도지구이앙서구중소우지우기공막여경야 자상즉명승자통정대부록분무공신원종일등사책권인추배칠원급흥해지수당관치민일이소궁쇄 막위심곤핍계이상구폐십조소시상람오방욕채용우시당의방오내불긍사진자방어궁향적막지구 일여양사우강명경지울연유일방사문지망차비향소위위인이명일세지징호몰후기운잉세시봉향 화역세불체이이무일사재숙지소포개한금갑인춘종의제발건사가오영어공강학유지편지우미왈 영모유점생병준이군색기어희 금천하명교륜상이인도기호식의자손지어조선막연불경어모이 유하씨제공판차수백년미황지병여취집어사이강위선격후수종철족지방혹불감태자막비보본추 원지사칙기초탈호속상원의하기휴재약인차이진일보모공지지이유계지모공지사이유술지칙차 실추모지대자이시재야역장뢰이영존어무궁야 갑인대서절 청천 류 원 준 기 永 慕 齋 記 昆陽縣西居二十里有孫梁里洞府實敝林壑明麗宜乎偉人達士派於其間以鳴一世也近古通政大夫 河公諱必圖字應瑞庶幾乎其人耶盖公禀沈毅之氣自童年從事武藝凡於弓馬砲劍行陳奇正之法硏 究精諧及英廟戊申之亂親率鄕兵二百戰于居昌之省草嶺未幾日生檎賊魁希亮態輔崇坤世奎等十 七名縳致于禹昆陽夏亨摩下而斬之使南方人士得保安堵之舊而仰紓九重霄旴之憂其功莫與京也 自上卽命陞資通政大夫錄奮武功臣原從一等賜冊卷因推拜漆原及興海之守當官治民一以蘇窮刷 瘼爲心悃愊繼以上救蔽十条䟽時相覽悟方欲采用于時黨議傍午乃不肯仕進自放於窮鄕寂寞之區 日與良士友講明經旨菀然有一方斯文之望此非向所謂偉人以鳴一世之徵乎沒後其雲仍歲時奉香 火歷世不替而以無一舍齋宿之所抱慨恨今甲寅春宗議齊發建四架五楹於公講學遺址扁之于楣曰 永慕遺点生秉俊二君索記於噫 今天下名敎淪喪而人道幾乎息矣子孫之於祖先漠然不經於慕而 惟河氏諸公辦此數百年未遑之丙余聚集於斯而講衛先格後收宗綴族之方或不敢怠者莫非報本追 遠之事則其超脫乎俗尙遠矣何其休哉若因此而進一步慕公之志而有繼之慕公之事而有述之則此 實追慕之大者而是齋也亦將賴而永存於無窮也 甲寅大暑節 菁川 柳 遠 準 記


담당자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16-06-23 16:21:17
만족도 조사 민원신청  시장에게 바란다  조직도  공지사항  공고/고시/시험 
페이지 수정요청열기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