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양향토사



곤양향토사

창원(昌原) 황씨(黃氏) 좌윤공파(左尹公派) 맥사(脉社)   시조는 공희공(恭僖公) 황석기(黃石奇)이다. 2세손 휘 상(裳)은 고려조에 호군(護軍)이 되고 공민왕(恭愍王)초에 밀직부사(密直府使)에 올라 익찬공신의 호를 받았다. 중국에 가서 장사성(張士城)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우고 홍건적(紅巾賊)의 침입 때에 왕을 호종(扈從)하여 일등공신이 되고, 추충분의(推忠奮義) 익찬공신(翊贊功臣)에 봉하여졌다. 이어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내고, 회성부원군(檜城府院君)이 되었다. 6세 휘 준(濬)의 호는 도은(道隱)이다. 태종 15년에 진주(晋州) 방어산(防禦山) 아래 본제에서 출생하였다. 소년시절에 자질이 개결(介潔)하고 학문(學文)을 좋아 하였는데 특히 경직의방(敬直義方)을 좌우명으로 하였다. 문종(文宗)때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는데, 마침 그 때에 계절병(時疾)이 창궐하므로 왕명을 받아 친히 제문(祭文)을 지어 천제(天祭)를 지내기도 하였다. 단종(端宗) 원년(元年)에 서해방면(西海方面) 순찰사(巡察使)가 되어 도민(道民)을 구휼(救恤)하였다. 단종(端宗) 갑술(甲戌)에 한성부(漢城府) 좌윤(左尹)에 올라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단종이 폐위(廢位)되자 공은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진주 방어산에 은거하여 어계선생(漁溪先生)과 함께 은윤자정(隱倫自靖)하였다. 함안(咸安) 죽산사(竹山祠)에서 향사하고 있다. 22세손 휘 경준(慶俊)은 일찍부터 한의학을 연구하여 인술(仁術)에 능통하였으며 시문(詩文)에도 명성이 높았다. 하동(河東)에 정거(定居)하였다가 다시 곤양으로 들어왔다. 종손은 25세손 영진(榮鎭)이며, 맥사에 5~6호가 살고 있다. 대용(大龍)은 조부(祖父)의 뒤를 이어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박사과정)을 졸업하여 회영당한의원(廻永堂 韓醫院)을 운영하고 있으며, 대성(大成)은 사천시청 지적과에 근무하고 있다.   문중대표는 24세손 대의(大義)이다.


담당자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만족도 조사 민원신청  시장에게 바란다  조직도  공지사항  공고/고시/시험 
페이지 수정요청열기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