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慶州) 최씨(崔氏) 관가정파(觀稼亭派) 중항(中項) 경주 최씨의 윗대(上代) 계보(系譜)는 실전(失傳)되어 알 수 없다. 시조(始祖)는 나말(羅末) 대문호(大文豪)이신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선생이며, 각 지방에 12서원(書院)과 23영당(影堂)이 있다. 입향조(入鄕祖)이신 21세손 휘(諱) 덕륜(德倫)은 서책(書冊)을 덮고 분연히 일어나 사천해전(泗川海戰)에 참전(參戰)하여 군공(軍功)을 크게 세웠다. 난(亂)이 평정(平征)되자 중항리(中項里) 와티(臥峙)에 정착하여 졸(卒)하니 조정(朝廷)에서 통정대부군자감정(通政大夫軍資監正)을 추증(追贈)하다. 묘(墓)는 와티안산(臥峙案山). 비석(碑石)과 석물(石物)이 있고, 후손(後孫)들이 경모당재실(敬慕堂齋室)을 지어 향사(享祀)하고 있다. 후손(後孫)들 중에는 효열부(孝烈婦), 효자(孝子), 효부(孝婦), 박사(博士), 석사(碩士), 교수(敎授), 교사(敎師), 건축가(建築家), 공무원(公務員), 해양수산인(海洋水産人) 등 그 수가 기천명(幾千名)에 이르며, 그 중 중항리에 30호 이상의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다. 득룡(得龍)파의 문중대표로는 32세손 대련(大連)이고, 종손은 33세손 상용(尙鎔)이다. 33세손으로 광우(光友), 은석(恩碩), 덕용(德容), 세움, 윤철(允喆), 기철(基喆), 삼철(三哲), 갑철(甲哲), 현철(鉉哲), 명철(明哲), 경철(京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