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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1. 동학의 연원(東學의 淵源)   동학(東學)은 서교(西敎) 서학(西學)에 대한 대칭(對稱)이다. 아울러 동학은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輔國安民), 척양척왜(斥洋斥倭)를 이념(理念)으로 하는 민족운동의 이상(理想)에서 연유된다. 이러한 동학사상은 조선조 철종 11년(1860)에 경주의 최제우(崔濟愚)(천도교 제1세 교주)가 동방에 근원을 둔 유불선(儒佛仙) 삼교(三敎)를 합일하여 창도한 것이다. 이에 동학은 불과 3,4년 사이에 경상 충청 강원도 등 하삼도(下三道)는 물론 멀리는 경기도에 이르기까지 널리 전파되어 그 신도수는 3천여 명에 이르렀다. 이때 고성접주(固城接主)에 성한서(成漢瑞) 울산접주(蔚山接主)에 서군효(徐君孝) 등이 활동한 것을 보아 경남지역에도 많은 세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사회상을 살펴보면 근세 조선왕조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 지도 이념이던 화랑도와 여조문화(麗朝文化)의 근간이던 불교를 배격탄압하고 오직 공맹(孔孟)의 유교로서 모화(慕華)에 의한 사대주의를 국시로 삼아 아무리 명론(名論)일지라도 그것이 유교와 정주학(程朱學)에 근거되지 않으면 즉석에서 거부당했는가 하면 아무리 훌륭한 과학이나 기술일지라도 그것이 양반이나 사림(士林)의 것이 아니면 이유 없이 묵살되기가 예사였던 사회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횡포는 비단 신앙과 교학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등 제반분야에 걸쳐 스스로 새로운 원리와 방향을 모색하고 있을 때 때마침 신기한 서교(西敎) 서학(西學)이 수입되어 이에 대한 무거운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를 신봉하여 발전하려는 것이 당시의 추세요, 현실이였다.   뿐만 아니라 이 무렵 영불(英佛) 연합군이 천진(天津)에 이어 북경성을 함락한(1860) 관계로 대청제국(大淸帝國)도 크게 흔들렸고 러시아 제국(帝國)도 두만강까지 접근하여 국제적 불안도 가중되고 있었거니와 동서의 해안으로는 무상 출몰하는 철선의 모습과 그들의 기적소리는 정체불명의 괴물처럼 민족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근년에 이르러서는 한해와 수해도 빈번하여 괴질인 호열자까지 만연하여 민심은 극도로 불안했다. 이러한 시기에 최제우는 천도는 유불선이 아니로되 유불선은 천도(天道)의 한 부분(部分)이라 하고 유(儒)는 논리(論理)와 불(佛)의 각성(覺醒)과 선(仙)의 양기(養氣)는 인간성의 자연한 품부(品賦)이며 천도(天道)의 고유(固有)한 부분이니 오도(吾道)는 무극대원(無極大源)하다는 인내천(人乃天)을 주창하여 도(道)는 천도(天道)라 하고 학(學)은 동학(東學)이라고 내세웠다. 그러나 최제우는 조정에 의해 혹세무민 했다는 죄목으로 고종 1년(1864) 3월 10일에 처형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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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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