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염업(鹽業) 염업(鹽業)이란 식염(食鹽)을 제조하는 산업을 일컫는 말로 소금을 한자어로는 식염이라 한다. 식염은 조미(調味), 염장(鹽藏) 등 일상생활에 널리 사용되는 외에 공업(工業)부분에 대량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천연으로는 암염(巖鹽)이 다량 생산되며 해수에는 3%정도의 염분이 함유되어 있다. 동물에게 소금은 생리적으로 필요불가결한 것인데 탄산과 결합하여 중탄산염이 되고 혈액이나 그 밖의 체액의 알카리성을 유지하는 구실을 한다. 또 인산과 결합한 것은 완충물질로서 체액의 산 알카리의 평형을 유지시키는 구실을 한다. 나트륨은 쓸개즙, 이자액, 장액 등 알카리성의 소화액 성분이 된다. 만일 소금 섭취량이 부족하면 이들의 소화액 분비가 감소하여 식욕이 떨어진다. 또한 나트륨은 식물성 식품 속에 많은 칼슘과 항상 체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칼슘이 많은 나트륨이 적으면 생명이 위태롭게 되는 경우가 생기고 염소는 위액의 염산을 만들어 주는 재료로서 중요하다. 이상과 같이 염분이 결핍되면 단기적인 경우에는 소화액의 분비가 부족하게 되어 식욕감퇴가 일어나고 장기적인 경우에는 정신무력, 권태, 피로나 정신불안 등이 일어나며 또 땀을 많이 흘려 급격히 소금을 상실하면 현기증, 무욕, 의식혼탁, 탈력 등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뚜렷한 기능 상실이 일어난다. 소금의 필요량은 노동의 종류, 기후 등에 따라서 다르지만 보통 성인에게는 하루 12~13g인데 소금을 많이 흡수하면 고혈압증의 원인이 되고 혈액 속의 염분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수분이 혈액 속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또한 진한 소금을 늘 섭취하면 위암의 원인이 된다는 설도 있다. 염전은 태양과 풍력 등의 자연력을 이용하여 바닷물을 증발, 농축하는 시설을 말하는데 천일염전은 세계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으나 홍해 연안 미국 캘리포니아 멕시코 서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가장 발달된 곳이며 생산량이나 품질에서도 가장 앞서가고 있다. 천일염전의 적지조건은 토질, 기후, 원료해수, 지세지반과 교통을 들 수 있다. 천일제염에 적합한 기상은 강우회수 및 강우량이 적고 건조하며 년 평균 기온은 25℃내외를 유지하며 년 간 증발량이 3,000mm이상이면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조건에 합치하지 않더라도 건계(乾季)와 우계(雨季)만 뚜렷하다면 천일제염에 적합하다. 우리나라와 같이 강우량과 증발량이 1200~1400mm선이고 강우회수가 많으며 년 평균 기온이 15℃라고 하는 조건은 부적합하다고 하겠다. 염전은 축조비의 절약과 염전 완성후의 유지 관리상 염전 지역 내에 큰 갯고랑이 없는 평탄한 간척지가 유리하며 인접지에 하천과 높은 산이 없는 곳이라야 하며 간척지의 지반고는 삭망(朔望)의 만조수면과 장조기(長潮期) 수면과의 중간조위(中間潮位)에 위치하는 것이 적당하다. 이 중간조위보다 높은 지반의 염전은 양수시설이 필요하며 낮은 지반의 양수시설은 필요 없으나 풍력이 약해서 증발율이 좋지 못하다는 단점을 갖게 되며 그 외의 조건은 교통이 편리하고 인근에 노동력이 많아야 하며 수요지가 좋아야 한다. 이 지역의 자연 조건 중 일기는 연중 맑은 날이 평균 110일 내외이고, 강수일이 93일 내외 평균 기온은 20℃내외 강수량은 1,200mm내외 일로 시간은 연평균 2,200시간 내외이다. 비는 4월에서 9월까지 연중 강수량의 70%이상이 내리고 있는데 이는 염전의 자연 조건에 적합한 편이 아니며 해수의 염분 농도도 3.2%로 나쁜 편인데 간사지가 경상남도의 82.6㎢중 19.4㎢를 갖고 있어 염전을 만들기에 좋은 땅의 여건은 갖추었다고 할 것이다. 또한 간척지의 토질이 좋아 일찍부터 염부(塩釜)가 발달하였는데 삼국시대부터 소금을 생산한 것으로 보아 이 지방에는 오랜 기간 동안 소금을 생산했으리라 짐작된다. 고려시대 충렬왕 25년(1299)에 각염법(榷塩法)을 실시하여 궁원(宮院)이나 사원(寺院) 권문세가에 의하여 개인 소유가 된 염분(塩盆)을 모두 국가에서 환수하여 염호(塩戶)라는 직책을 두어 이들이 생산한 소금을 의염창(義塩倉)에 바치게 하여 소금이 필요한 사람으로 하여금 의염창에 가서 국가가 책정한 공정 가격으로 소금을 사도록 하되 거주지의 군현에 베(布)를 선납한 후에 소금을 받도록 하였다. 위와 같이 국가가 생산한 소금의 유통을 장악한 각염법은 경매제도와 비슷하였으나 여말의 혼란한 사회의 풍조로 그 질서가 문란하게 되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여말의 혼란기에 개인에 의하여 점유된 염장(塩場)을 모두 환수해서 국유화하여 연해주군(沿海州郡)에 염장을 설치하여 관에서 자염(煮塩)케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이 관염을 시가에 따라 자유로이 쌀이나 베로서 사가도록 하였다. 사천지방의 염분과 염업을 살펴보면 조선전기인 15세기 경상남도 지리지에 사천현 때는 공염분(貢塩盆) 249좌 모두 322좌의 염분이 있었는데 세종실록 지리지에 수록된 8도 염분이 모두 1,362좌이므로 사천시 관내에는 322좌의 염분이 전체 염분의 23.6%이므로 거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사천만 연안에는 자염이라 하여 소금을 굽는 염분이 많았던 것은 연안 서쪽에 위치한 곤양군이 동쪽의 사천현보다 6배가량 많은 것은 바닷물을 끊이는데 필요한 연료의 공급원이 야산에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5세기 말에 편찬된 경상도 속찬지리지의 사천 현조에는 염분이 현의 남쪽 통양창포리(通洋倉浦里) 한 군데 밖에 없는데 비해 곤양군 관내에는 군의 동쪽 가리면(加利面)의 아방포(牙方浦), 모랑포(毛郞浦), 길안리(吉岸里)의 성창포(城倉浦), 염전포(塩田浦), 구량포(仇良浦), 서쪽 대정리(大庭里)의 율포(栗浦), 금양진제포(金陽辰梯浦) 등 7개처에 있었는데 이곳 모두 어량(魚梁)이 있던 곳으로 어량과 염분이 함께 있었다. 조선전기에 사천지방의 공염분은 272좌인데 순조 32년(1832)에 간행된 사천 곤양군 현 읍지에는 사천현의 염부가 38좌이고 곤양군의 염분은 82좌로 기록되어 있어 공염분이 120좌로 145좌가 감소하고 있음으로 보아 점차로 염소가 줄고 있음은 소금을 만드는 염간(塩干)의 노력이 견디기 어려운 고역으로 염간직을 기피하는데서 오지 않았나 생각되며 납세액으로 바치는 소금의 량이 과다하여 염부가 감소하였으며 특히 일제 말엽 대동아 전쟁의 발발로 인하여 일제에게 노동력을 강제 징용 당하여 중단 되었다가 1945년 광복이후 소금의 수요량이 극히 부족하여 염가가 폭등함으로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 해안 곳곳에 다시 염업이 성행하게 되었다. 이 지역의 제염방법은 염전위에 깔려 있는 상토(床土)에다 원료인 해수(海水)를 뿌려 증발시켜 염도를 농축시키는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하여 일정한 농도에 도달하면 그 상토를 긁어모아 농축된 염분을 침출시켜 가마솥에 끓여서 소금을 생산하였는데 그 시기는 1945년도 광복이후부터 1949년도까지 계속되었으나 점차 헐값의 소금이 다량 수입, 시판되어 이후로 전반적으로 폐업되었다. 조선조 때의 염전현황은 찾을 수 없고, 다만 사천읍 산성 수양루 앞에는 관내 5개면 염전민들의 민기호 군수 선정비(군수비석참조)가 있으며, 근래까지 계속 되었던 염전의 자료를 참고로 기록한다.
1) 염전 현황(鹽田 現況)
소재지 | 염전 면적 | 경영자 | 종업원 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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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성명 | |||
대진리 한월 니머리 77-2번지 499번지 | 1,000평 | 곤양면 대진리 한월부락 | 김두갑 이일수 조석세 추을의 이성권 김승수 | 6명 |
환덕리 본촌 방아골 890-3번지 890-4번지 890-6번지 | 1,500평 | 곤양면 환덕리 본촌 | 김홍엽 이삼석 채만세 정동상 진경제 김두석 | 6명 |
환덕리 본촌 너린벌 894-4번지 892-5번지 | 1,000평 | 곤양면 환덕리 본촌 | 육자영 채수경 이태세 | 3명 |
환덕리 본촌 체변골 949번지 | 300평 | 곤양면 환덕리 본촌 | 김수엽 | 2명 |
환덕리 본촌 퉁둔언안 1210-4번지 1210-5번지 1210-3번지 | 1,500평 | 곤양면 송전리 당천 곤양면 본촌 | 제삼태진 한인수 진석제 | 3명 |
환덕리 고동포 장포방조제 안들 1172-335번지 1172-260번지 1172-261번지 | 3,000평 | 곤양면 환덕리 | 조광제 조경제 김만암 박용갑 조영래 | 10명 |
환덕리 고동포 부락앞 들 117-8번지 116-6번지 | 1,000평 | 곤양면 환덕리 고동포 | 조점홍 조성홍 조호제 | 3명 |
가화리 탑동 머언개 앞 87-1번지 | 1,200평 | 곤양면 검정리 | 정명주 신현옥 | 2명 |
중항리 와티 감성골 앞 58번지 | 400평 | 곤양면 중항리 | 최을곤 최봉호 | 2명 |
중항리 안도 방조제 안들 216번지 217번지 217-1번지 211-3번지 215-3번지 212-2번지 | 3,500평 | 곤양면 중항리 | 김안국 김수성 김효영 | 8명 |
중항리 안도 통시개 903-5번지 903-6번지 903-7번지 | 1,500평 | 곤양면 중항리 | 김안국 | 4명 |
중항리 점복개 언안들 130번지 131번지 132번지 | 2,500평 | 곤양면 중항리 | 윤차식 장봉열 장효조 | 6명 |
중항리 점복개 사공등 앞 모래밭 | 500평 | 곤양면 중항리 | 윤또상옥 최학진 | 2명 |
검정리아방639번지 | 500평 | 곤양면 검정리 | 최한조 | 2명 |
검정리 서리골 352번지 351번지 | 400평 | 곤양면 검정리 | 신재성 | 2명 |
합계 | 19,800평 | 42명 | 61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