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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작도정사

8. 어득강(魚得江) 군수와 작도정사(鵲島精舍)   작도(鵲島)란 까치섬이란 뜻으로 곤양에서 2km정도 떨어진 서포면 외구리 동구마을에 있으나 곤양군에 속해 있었으며 당시는 섬 이였는데, 1938년 야마다(山田, 日本人)가 바다를 메우고 곤양천이 흐르는 물을 오리나 되는 둑을 쌓아 갯벌을 농경지로 만듦으로 작도는 육지가 되었다.   470여년 전 곤양군수였던 어득강(1470 ~ ?) 군수가 당시 명망이 높은 퇴계 선생을 초청하여 이곳에서 뱃놀이와 생선회를 맛보며 조석(潮汐)을 논하던 때는 경치 좋은 섬이었다. 군수 어득강은 대사헌을 지내다가 곤양군수로 부임하여 향교를 중심으로 학문진장에 많은 공을 남겼으며 당시 그는 63세였으나 약관의 퇴계 선생(당시 32세)을 연령에 개의치 않고 초청하여 융성한 접대와 학문을 논하던 학자였다. 퇴계선생이 직접 찾았던 이곳을 길이 기념코자 유림들이 이 곳에 1928년에 작도정사(鵲島精舍)를 세워 매년 음력 4월 2일 향사(享祠)하고 있다. 작도정사 앞에는 퇴계선생 장유소 비가 서 있으며 어득강군수와 조수에 대한 시가 전해지고 있다. (제영편 참조) 昆陽鵲島精舍儒契創說發起文 右文爲通諭事伏以尊賢崇拜寔出於先進之彛模搆亭致禮亦係後學之美擧也竊惟本郡鵲島卽故退溪李先生之杖屨所也而距今數百年尙無一片石一草亭之建築者惟我本郡士林之共所心歎然而事巨力綿有志未就者年已久而則可謂寒心者此也以箬他郡旣有如此美蹟則豈至今日而無一亭哉挽近世俗頹敗儒風不振尤可慨歎雖至今日本郡有志各自義捐共築一亭每於春秋慕先賢而釋菜開後學而講論是豈非本郡儒林之誠意乎如此然後恐得免他郡之貽笑故願設一契欲築一亭伏願有志僉尊同心相應鴈列其名鳩聚其財以完契事以圖築亭遺傳於百世之地千萬幸甚 昭和三年舊戊辰二月 日 發起人 尹乙斗 鄭埈用 鄭埈軾 等

퇴계선생 장구소비 <1971(좌), 2004(우) 세움>

곤양 작도정사 유계창설 발기문   우(右)와 같이 글로서 통고(通告)한다. 생각건대 현인(賢人)을 높이 숭배(崇拜)함은 선배(先輩)들의 이모(彛模)요, 정(亭)을 지어 예(禮)를 다함은 후배(後輩)들의 아름다운 일이다. 생각하니 본 군의 작도는 퇴계(退溪) 이선생이 일찍 쉬어 가신 곳이다. 이제 수백년이 지났으나 한조각의 비석(碑石)과 초정(草亭) 하나 없으니 이는 우리 군(郡) 유림(儒林)의 다같이 마음 깊이 탄식하는 바이다. 그러나 사업은 거창하고 재력(財力)은 약하여 뜻은 있으나 이루지 못한 지가 수백년이 지나니 진실로 한심(寒心)한 일이다. 타군(他郡)에는 이미 아름다운 정자를 창건하였으나 우리 군은 어찌 이제토록 정각하나 없을쏘냐? 더욱 근래에는 세속(世俗)이 퇴패(頹敗)하고 유풍(儒風)이 쇠잔하니 개탄할 일이다. 비록 이제라도 본군(本郡) 유지들이 각자 성금(誠金)을 거출, 정사(亭舍)를 창건하여 춘추(春秋)로 선현(先賢)을 앙모하여 채례(采禮)를 올리고 후학(後學)을 계도하며 학문(學文)을 강론함이 본군(本郡) 유림의 당연히 하여야 할 성의(誠意)이다. 이러함으로써 타군(他郡)의 비웃음을 면(免)할 것이다. 원컨대 계(契)를 창설하여 정(亭) 하나를 건립하고자 하오니 유지첨존(有志僉尊)께서는 서로 합심(合心)하여 계책(冊)에 서명하고 재산(財産)을 모아 훌륭한 정각을 창건하여 백세(百世)토록 전(傳)하여 주시기를 천만(千萬) 앙축하나이다. 1928년 무진 2월 일 발기인 윤을두 정준용 정준식 등 <유계(儒契)의 규약과 수백명에 달하는 계원(契員)의 명부(名簿)는 편의상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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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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