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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2. 곤양 전화(昆陽 戰禍)   1) 7월 29일부터 원전(院田)에서 곤양간(昆陽間) 미전투기(Z기)의 폭격 및 기총사격이 시작 되었다. 적(敵)의 점령하(占領下)에 들면서 보급 수송 작전 차단과 적군에게 많은 타격으로 전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폭격은 계속되었다.(필자(筆者)는 7월 31일 밤에 친구와 같이 남문(南門)마을과 초등(初等)학교 앞까지 폭격으로 불타고 있는 현장(現場)을 돌아봤다. 성내리(城內里)와 남문외리(南門外里)의 가옥(家屋)들은 변두리 외는 대부분(大部分) 다 타고 2, 3채만 반파된 상태로 남아 있을 정도였고, 곡식 타는 냄새는 진동하고 거리는 죽은 듯이 조용하여 너무나 무시무시하고 겁이나 오래있을 수가 없었다.   사태가 이러고 보니 성내(城內), 남문(南門)은 말할 것 없고 도로변(道路邊) 주민(住民)들까지 모두 피난을 나가고 집은 비었고, 대부분 주민들은 안전(安全)하고 먼 곳으로 피난을 가고, 못 간 사람들은 인근 외딴 마을 또는 교통이 불편한 산골이나 친척집을 찾아 피난을 떠나게 되었다.   2) 8월 2일 동구(東鳩) 오리방천에 사상자 발생. 언제 누가 한말인지는 모르나 떠도는 말이 UN군 비행기가 공습을 해도 일반 국민들은 흰옷을 입고 잘 보이는 곳에 모여 있으면 안전(安全)하다고들 하였다. 그래서 원전(院田)부근을 폭격할 때부터 동구(東鳩) 오리방천에 모여 들기 시작해서 8월 1일 곤명(昆明) 조장(助場)마을 앞 정자나무 밑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기총사격으로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8월 2일에도 오리방천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들 가운데 빈 터에는 피난 짐을 쌓아둔 곳이 군데군데 있었고 달구지를 끄는 말 몇 마리가 들 가운데 매여 있었으니 무슨 공산군의 군수물자 야적장으로 오인할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정오 넘어 점심시간 쯤 되었을 때 전투기(Z기) 2대가 폭음을 내면서 저공으로 한번 선회 한 다음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 순간 그 많은 사람들이 흩어졌고 남은 사람은 부상자와 죽은 사람이었다. 그때 죽은 사람이 13명이였고 부상자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하였다. 그런데 부상자들은 더운 날씨에 병원은 없고 약(藥)조차 구할 길이 없었으니, 치료제는 당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나뭇잎과 뿌리즙을 바르고 하였으니, 그 안타까운 심정 말할 수 없고 “이것이 전쟁이구나”라고 한탄 할 뿐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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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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