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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2. 조운(漕運)   지방에서 조세로 수납하는 미곡ㆍ포백ㆍ기타 물품은 주로 물길(漕運)을 통해서 중앙으로 수송되었다. 바다를 통해 이루어지는 조운을 조전(漕轉)이라고 하며, 내륙의 강이나 하천을 이용하는 조운을 참운(站運)이라고 불렀다. 조운선으로 대량의 조세곡 내지 물품을 운송하기 위하여 자연히 조창(漕倉)포구가 발달하게 되는데, 이 때 모여드는 사람들로 인하여 포구지역은 대단한 시장으로 변한다. 이런 것의 상징적 놀이 문화가 가산 오광대이다. 고려시대 조운제를 이어 받아 조선왕조도 국초부터 연해 각처에 조창을 설치하였다. 경상도에는 사천의 통양창(通洋倉), 창원의 마산창(馬山倉), 김해의 불암창(佛巖倉)이 설치되었다. 통양창(고려 때는 通陽倉)ㆍ마산창(옛날에는 石頭倉)의 두 조창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고려 때부터 설치된 조창이다.   그러나 조선 초기 경상도의 조운은 태종 4년(1404)에 들어 와서 해로의 위험으로 폐조(廢漕)되기에 이르렀다.41)    그것은 전해 계미년 5월, 경상도의 3창 조운선 34척(30척을 1 綜이라 함)이 선단을 이루고 전라ㆍ충청도 연해를 행선하던 중, 해로의 험악(險惡)으로 일시에 모두 패몰(敗沒)하여 수많은 희생자를 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경상도의 조세는 그해(1403) 6월부터 육전(陸轉)으로 전환하여 내륙 참운을 통해 충주 경원창(慶源倉)에 수납하였다. 따라서 경상도의 조운은 조선 후기에 부활된다. 곤양군의 경우 현재의 비봉내에서 조세를 싣고 대진 나루터에 모았다고 한다.


  41)“(前略) 歲在甲申以海路危年漕運立陸轉之法納于忠淸道忠州地 慶源倉” <慶尙道地理志> 「道內租稅捧上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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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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