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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제1절 유교(儒敎)   유교(儒敎, Confucianism)는 중국 춘추시대 말기에 공자 (BC 551년경~479년경)가 집대성한 사상의 가르침을 말하며, 따라서 유교를 공자교(孔子敎)라고도 한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ㆍ제가(齊家)ㆍ치국(治國)ㆍ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ㆍ정치학이며, 수천 년 동안 중국ㆍ한국ㆍ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왔다. 춘추시대 말기에 태어난 공자는 대성(大聖)이었으나 고국인 노(魯)나라에서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15년간 여러 나라로 돌아다니며 ‘선왕(先王)의 도(道)’ 堯ㆍ舜ㆍ禹ㆍ湯ㆍ文ㆍ武ㆍ周公의 道   를 역설하였으나 끝내 그 이상을 펴지 못하였다. 만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사학(私學)을 열어 많은 제자를 가르치는 한편 《시(詩)》《서(書)》의 2경을 정리하고 예(禮)ㆍ락(樂)을 선정하였으며 󰡔춘추(春秋)󰡕를 저술하고 또한 《역(易)》을 좋아하여 그 해석서라 할 수 있는 󰡔십익(十翼)󰡕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상의 진수(眞髓)는 그가 죽은 후, 제자들이 수집 편찬한 그의 언행록인 󰡔논어(論語)󰡕에서 잘 나타난다. 공자 사후에 8개의 학파가 생겨났으며, 각 학파는 공자 제자들이 주축되어 운영되어졌다. 공자는 인을 가장 중시하였으며, 인은 곧 효(孝)이며 제(悌)라 하여 인의 근본을 가족적 결합의 윤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육친(肉親) 사이에 진심에서 우러나는 애정을 강조하는 한편, 그것을 인간 사회의 질서 있는 조화적 결합의 원리로 삼고, 정치에도 전개시켰다. 그것은 춘추시대 말기의 인간주의적 풍조의 영향을 받아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도덕성에 주목하고, 거기서부터 현실사회의 혼란을 구제하려 하였다. 공자는 훌륭한 정치를 행했던 주(周)의 예락(禮樂)을 끌어들여 그 실행을 강조하면서, 예는 전통적 · 관습적인 사회규범이며 그것은 곧 인의 사회성 객관성을 보증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 후 맹자가 나타나 인의 실천을 위한 의(義)의 덕을 내세워 인의(仁義)를 병창(倂唱)하였으며 또한 인간의 본성은 선(善)이라 하여 내면적인 도덕론을 펴고, 선한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덕치(德治)로서의 왕도론(王道論)을 주장하였다. 맹자에 의하여 유교는 뚜렷하게 내면적으로 심화되고 또 정치론으로도 정비되었으며 한편 오륜(五倫)도 이 무렵에 시작되었다. 얼마 후 순자(荀子)가 나타나 맹자의 내면화에 반대이론을 내세웠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악(惡)이므로, 외면적 · 객관적인 예에 의해서만 수양이 완성된다고 생각하여 예를 강조하였다. 또 공자와 맹자가 존중하던 불가지(不可知)인 하늘의 존재를 추방하고 인간의 독자적 입장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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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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