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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제4절 1920년대 곤양의 신문 기사내용   3ㆍ1독립만세운동 이후 일본제국주의는 종전의 무단통치에서 소위 문화통치의 수단을 강구한다. 총독의 자격으로 종전의 현역대장에서 문관도 총독이 될 수 있으며, 학교 수를 증가하고,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민족계 신문의 간행을 허가하기도 하였다. 다음은 당시 동아일보에 기재된 곤양에 관련된 내용 등이다.(당시 신문에 게재된 원문대로 게재함)   동아일보 1920.07.17. 4면 7단   本社晋州支局記者에 尹炳殷氏 任命, 泗川販賣所와 昆陽販賣所 指定   동아일보 - 사고 - 지국ㆍ지사   사천군 곤양면 성내리 동아일보 진주지국 곤양판매소 趙昇濟   동아일보 1920.08.06. 4면 7단   昆陽靑年會創立(昆陽)   有志 靑年 ?(金 崔)의 發起로 昆陽 靑年會를 組織하고 去 7월 21일 當地 公立普通學校內에서 創立總會를 開한 바 當日은 農繁時임을 不拘하고 百餘名의 來會者가 행하?스며, 趣旨說明과 規則通過가 有한 後, 任員選擧를 行한 바 當選任員은 如左하더라   會長 金泰坤(?), 副會長 崔榮範, 總務 崔埈德, 經理部長 金奭坤, 評議長 文廷錫, 智育部長 金(余?)起鴻, 德育部長 崔雲龍, 體育部長 崔榮來, 顧問 李光琮, 文昌鎭, 趙鏞益   동아일보 1920.08.20. 4면 3단   昆陽靑年會의 虎疫防疫活動, 男女에게 豫防注射及 交通注意 等 防疫上大大的活動   콜레라   동아일보 1920.09.18. 4면 3단   昆陽靑年會 臨時總會開催   昆陽靑年會 臨時總會를 9월 10일 오후 2시 臨時事務所內에 開하고, 會長 金泰坤氏 司會下에 會館工事速成의 件, 虎疫豫防에 一層注意의 件, 犯則者處罰實施의 件, 及 一部 任員의 改選을 必한 後, 前期 無記名 査察을 記名 査察로 改正하얏스며, 本會 維持方針에 대하야 會長의 熱辯이 有한 後 午後 7시에 閉會하얏다더라.   동아일보 1921.04.12. 4면 5단   昆陽靑年會 第二回 定期總會開催   慶南 昆陽 靑年會는 昨年七月傾 創立以來 精神上 及 物質上 許多한 辛苦를 蒙(?)함을 不拘하고 會員諸氏 日熱的 熱誠으로 會務의 發展을 圖함은 一般이 共認하던 바이라 今月 二日 午後 二時에 第二回 定期總會를 同 會館內에서 開催하얏는대 前會長 崔榮範氏의 會務經過報告가 有한 中에 特히 當地에서 未曾有인 勞動夜學 及 女子夜學을 昨秋開學以來 學生의 逐日增加 又는 熱心就學함은 可賀할 現狀이라 開會順序에 依하야 任員選擧에 着手한바 和氣滿場裡에 選擧를 終了하니 會長 崔榮範, 副會長 崔敬在, 總務 金鍾吉, 評議長 崔雲龍, 智育部長 趙承濟, 德育部長 崔浩川, 體育部長 裵龍雲, 幹事 崔汝洙, 金權柱, 書記 趙汶濟, 崔璟淙(涂?) 諸氏가 當選된 後 附議事項은 4월 下旬頃에 本會 大運動會를 開催할 同時에 勞動學生 及 女子學生을 聯合하야 盛大히 行하기로 決議한 後 同 六時에 無事閉會하얏다더라.   초顧問 李光琮, 文昌鎭, 趙鏞益   동아일보 1921. 4. 24. 일요일 4면 2단   昆陽郡 農夫勞動團   경남곤양은 인민의 생활이 전부 농업에 종사하는 바 차지(此地)는 작년 농작이 흉탄(凶歎)을 미면(未免, 면치 못함)이요, 겸(兼)하야 (아울러) 미가저락(米價低落, 쌀값하락)에 인하야 自然 小農家의 悲境에 陷함을 難免이라. 此에 際하야 農夫 勞動團을 組織하고, 陰 3월 3일에 當地 南門外 農夫運動場에서 總會를 開催한 바 附近 農夫 全部가 出席하야 盛大히 종료 하?는데 그의 規約은 左의 3 個條로 定 하?다더라.   1. 農夫는 親睦을 圖하야 團體力을 增進할 事   2. 貯蓄心을 養成하야 農村의 經濟를 報和케 할 事   3. 農事改良의 要素인 地主及小作人間 關係를 正義的으로 解決할 事   1921년에도 동아일보에는 곤양군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1914년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개편된 행정구역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다.   동아일보 1921.04.24. 4면 3단   昆陽靑年會의 會館落成 祝賀運動會에 射亭員 補助(昆陽)   청년단체   慶南 昆陽은 地僻路隔하야 人民의 智識及生活狀態가 他地에 比하야 落伍의 歎이 不無하더니, 當地 靑年會 創立 以來 民智가 稍히 啓發에 漸進하거니와, 今月二十四日을 卜하야 昆陽 靑年會에서 會館建築落成紀念으로 盛大한 祝賀 運動會 開催에 대하야, 昆陽 射亭契員等은 此 運動會에 對하야 熱熱한 同情을 表하야, 射亭은 雖廢나 靑年會는 不可不援이라 하고 金五十圓을 寄附하야 同運動會費에 補用케 하얏다더라.   동아일보 1921.05.02. 4면 5단   昆陽靑年會運動會   청년단체   慶南昆陽靑年會運動消息은 旣報하얏거니와, 預定한 4월 24일은 雨天으로 因하야 25일로 延期한 바, 當日은 天晴風和에 萬國의 旗號는 中空에 飄飄하는도다. 上午九時 同會館落成式을 擧行한 後 普通學校運動場으로 進發할쇠 , 勞動夜學生의 先驅로 女子夜學生 及 靑年會員의 各部唱歌聲은 掀天動地하는 中에 運動場에 入하야, 會長의 開會辭로 始하야 運動을 行하매, 時時로 喝采聲은 場內를 震動하는 바, 八百名의 觀衆은 男女學生의 活潑한 行動과 流暢한 唱歌聲에 興奮되야, 子女의 敎育必要를 絶叫할뿐더러 靑年會의 主目的을 ?賀不己하얏스며, 同下六時頃에 盛況裡에 終了하얏다더라.   동아일보 1921.05.14. 4면 6단   昆陽靑年會夜學會   청년단체   慶南昆陽靑年會館內 昨秋以來로 勞働及女子夜學을 開催하얏다함은 旣報와 如하거니와, 本月八日에 勞働夜學生 全部가 出席하야 互相議論하되, 知識向上과 人類平等은 우리의 希望이라고 絶叫한 結果, 우리의 知識을 統一함에는 同窓會의 組織이 急務라 하야 勞働夜學同窓會를 組織하얏는대, 任員은 會長에 同夜學敎授 崔榮範氏를 推薦하고, 總務에 徐太守, 財務에 陸福明, 書記에 黃龍道, 幹事에 朴又石, 尹學祚 諸君을 投票選擧한 後 斷髮論이 滿場一致되야 卽席에서 七十二人의 學生이 全部斷髮을 行하얏다더라.   동아일보 1921.06.02. 4면 3단   故柳瑾先生哀悼式 : 昆陽靑年會主催로 三百餘人이 參席하야   동아일보 1921.07.19. 4면 4단   昆陽靑年會創立 一週年紀念式擧行   청년단체   동아일보 1922.11.18. 4면 2단   昆陽小作人大會開催, 對地主要求決議   소작인 - 단체   昆陽에서는 去六日에 小作人 臨時大會를 靑年會館內에 開하고, 小作人의 地主에 대한 要求를 決議하?는대, 地主側으로 趙鏞益氏는 小作人의 要求가 正當한 事를 言明하?더라.   동아일보1922.11.27. 4면 4단   昆陽勞農協會總會   昆陽에서 前者 小作人大會의 決議事項을 實行하기 爲하야 勞動者及小作人農民으로서의 勞農協會를 組織하고, 去十七日에 靑年會館內에 總會를 開催하야 左記任員을 選定한 後, 左와 如한 決議를 行하?다더라.   1. 我等의 要求를 承諾한 地主 20餘名外에 아직 未承諾한 地主 23人에게 再次交涉할 事   2. 交涉이 圓滿치 못할 時는 最後手段을 執하고 小作人의 保護方針을 定할 事   3. 本會의 決議에 抵觸되는 者 有하면 個人交際外 지도 斷絶할 事   執行委員長 崔榮範, 總理 黃三浩, 庶務部委員 金鍾吉 黃五淸, 經理部委員 李起鴻 崔浩 敎育部委員 文甲式 白占守, 産業部委員 李致奉(?) 崔道鉉, 調査部委員 金泰容 鄭汶錫, 執行委員 趙鏞益(?) 外 三十九人   동아일보 1923.07.22. 4면 8단   昆陽靑年創立紀念   청년단체   동아일보 1923.11.25. 4면 7단   昆陽靑年會近況   청년단체   시대일보 1925년 12년 24일   泗川 昆陽에도 無産新聞支局 慶南 泗川郡 昆陽에 住한 .....   동아일보 1930.11.6.   二百餘作人이   東拓舍音排斥 - 경남 곤양면 대진리에서   理由는 作權無理移動   경남 사천군 곤양면 대진리(慶南 泗川郡 昆陽面 大津里)에서 동척답 일백 이십여 두락이 있는데, 그 사음(舍音)인 천규석(千圭錫)은 무리하게 소작권을 이동하는 등 무리한 처사가 많음에 수년간 불평을 품은 이백여 주민은 단결로 합쳐 사음과 교제를 단절하고, 심지어 품파리하는 노동자까지 그에게는 품을 팔지 안키로 되엇다는 바 이제 그 자세한 내용을 듯건대 동 사음은 동척답일백삼십여 두락중 육십여 두락을 문중에 경작케 되엇는데, 소작답이라도 허물을 잡아 그것을 리유로 소작권을 맘대로 삭탈하는 일이 넘우 심하여, 매년에 독음하는 수도 또 헛구실을 만드러 소작권을 이동하는 일도 잇슴으로 이가튼 적원이 가해져서 이백여주민들에게 절교를 당한 것이라 한다. 千舍音談 동적소작계장인 천규석(千圭錫) 사음의 談을 듯건대 김용택(金容擇)이란 소작인의 작권이동이 절교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작년에도 품파리하는 동리사람들이 왔는대 금년에는 아모도 오지를 아니합니다. 그리고 면장이 오섯을때에는 화해된 듯 십드니 간 後에는 아모 화해의 긔색이 업습니다.   동아일보 1930.12.30.   경남 사천군 서포면 금진리에 무산아동의 유일무이한 육영사업의 하나인 야학교가 고고의 성을 발하면서 탄생한지가 오래되어서 수재를 양성함이 불소하얏섰는데 금년 지난 여름 번농기에 임시 휴과를 하얏다가 금동에 개학하려 하얏으나 돌연 서포주재소에서 정식 허가업는 야학을 시킬 수 업다는 청천에 벽력가튼 중지명령에는 수업시 중지를 하고 잇다는 바 취학열이 극도에 달한 야학생들은 당국의 허가만 기다리고 잇는데 오떤 학부형은 말하되 농촌에서 야학가튼 것이 무엇이 불온하기에 속히 하부치 안코 당국에서도 그깥 허가 업다고 중지하라는 것이 알수 업단말이외다. 하여간 허가가 속히 하부될 것과 그 동안에 주재소 당국도 묵인허가하야주기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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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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