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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제10절 상공업 및 장시(場市)의 발달   임진왜란 이후 실사구시의 풍조가 발생한데다가 17세기 들어서 상공업의 발달, 화폐경제의 발달, 노동 생산력 증대, 외국과의 교역증대, 국가 통제력 약화, 초기 시장경제의 태동 등으로 중앙 및 지방에서 장시(場市)가 발달되었다. 18세기에는 전국에 1,000여 개소의 장시가 서고 있었으며, 그 중에서 규모가 큰 것은 이미 상설시장으로 발전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보부상(褓負商 : 봇짐장수와 등짐장수)을 상대로 하는 도가인 객주나 여각이 발달하게 되었다. 객주나 여각은 도가 뿐 아니라 창고업ㆍ위탁판매업ㆍ운송업ㆍ여숙업(旅宿業)을 비롯하여 대부(貸付)ㆍ어음발행ㆍ예금 등의 은행업무도 번성하게 되었다. 동시에 상업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각종 공인단체도 조직되게 되었다.   󰡔경상도읍지󰡕에 의하면 곤양군내에는 북문외장(北門外場 : 5일과 10일에 개시), 진교장(辰橋場 : 매월 7일에 개시) 등 2장이 있었다고 한다. 곤양의 북문외장은 읍성의 북문밖에 있었는데 진교장(현 하동군 진교면)과의 거리는 거의 40리나 되었다. 이들 장시는 모두 지방민들의 수요와 공급의 필요에 따라 5일 간격으로 열리는 정기 시장으로서 농어민들이 생산한 농작물이나 수산물, 혹은 그들이 부업으로 만든 수공업품과 어염 등이 물물교환 또는 쌀ㆍ포목ㆍ화폐를 교환수단으로 하여 매매되었다. 또 인근 각지를 순회하면서 행상을 전업(專業)으로 하는 이른바 보부상이 시장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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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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