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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향토사

제7절 임진왜란시의 곤양   선조 25년(1592) 임진년 4월에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왜군이 동래에 상륙한지 20일 만에 서울을 함락하고 1개월 만에 함경도까지 진격하여 조선은 비참한 지경이 되었다. 이광악 곤양군수와 김시민 진주목사의 치밀한 준비와 지혜롭고 강인한 항쟁으로 불과 3,800명의 민관군연합군사로 3만2천여 명(6만이라는 설도 있음)의 왜군 정예병을 괴멸시키는 최초의 진주대첩 승리를 거둔다. 이 전투로 말미암아 풍신수길의 군량미 확보 차원에서 호남평야 거점 전략을 통한 한반도 지배와 명나라 침공의 계획은 좌절되게 된다. 이순신장군은 한려수도 특히 선진과 삼천포에 진을 치고 곤양군수를 비롯한 다른 지방 방백들과의 긴밀한 지휘체제로 해상에서 철저하게 왜군들을 섬멸하였다. 한편 전투시에도 당파와 모함의 작폐는 계속되어 이순신장군은 투옥되고 28일 만에 풀려나 권율장군 밑에서 백의종군(白衣從軍)하면서 곤양을 거치게 된다. 한편 임진왜란시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정기룡이라는 말을 생기게 한 정기룡 장군이 바로 곤양 출신이다. 무수한 살상과 참화를 남기고 임진왜란은 발발한지 7년만인 1598년 11월 20일 노량해전의 대승리로 임진ㆍ정유 두 번에 걸친 왜란은 끝이 났다. 기타 곤양에 관련된 상세 내역은 별도의 장에서 자세하게 다루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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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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