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양향토사



곤양향토사

제12장 1980년대의 곤양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뒤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遇), 정호용(鄭鎬鎔) 등의 하나회가 중심이 된 신군부(新軍部) 세력이 1980년 4월 사북(舍北) 탄광 노동자 파업ㆍ5월 전국 대학생들의 대규모 시위 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5월 17일 신군부(新軍部)에 의해 전국에 비상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5월 17일 이후에 수립된 정치 체계는 전국 600여 명에 가까운 정치인들이 정치 풍토 쇄신법에 묶인채 여당인 민정당과 야당인 민한당을 비롯하여 정당을 조직화 하였다. 이는 정당간의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로 패권정당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고, 여ㆍ야간의 정권교체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황을 낳게 하고 있다. 1980년 11월 25일 개정된 정당법에 따라 정치활동이 1981년 1월 5일 창당대회를 열어 정강정책ㆍ당헌 등을 결정 발표하였고, 1월 25일 24시를 기하여 전국에 통행금지제도를 해제(일부지역 제외)하였다. 그리하여 개정된 정당법에 따라 1980년 2월 12일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를 실시 김민조(金敏助), 최영환(崔永煥), 김봉삼(金峯三) 등이 출마하여 김민조(1,496표), 최영환(1,482표) 2명은 당선되고, 김봉삼(933표)은 낙선되었다. 대통령 선거인단이 간접 선거로 1980년 2월 25일 민주 정의당 후보 전두환(全斗煥)을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1980년 3월 1일 제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1981년 3월 25일 실시한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안병규, 이경도, 조병규, 강춘성, 허병호, 김재천 등 6명의 후보자가 치열한 경쟁 끝에 민주정의당 후보 안병규가 당선되고, 제12대 총선에서도 안병규가 재선되었다.   1985년 2월 12일 총선에서는 이상민(李尙玟)후보가 당선되었다.   한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급서로 새마을 운동이 한때 주춤하였으나, 1980년대에 들어 새마을 운동의 방향을 1970년대 관위주의 사업에서 민간위주로 전환 하였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1980년 10월 새마을 운동 조직 육성법이 입법회의를 거쳐 1980년 12월 13일 법률 제3269호로 공포되었다. 이리하여 지원 추진 지도 방안을 개선 5대 중점 시책으로 책정하여 농촌복지환경의 향상ㆍ농촌소득기반의 확충ㆍ도시 새마을 운동의 심화ㆍ공장 새마을 운동의 확대ㆍ새마을 정신 국민교육의 확대 등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였다. 1980년대의 이 운동은 국민 화합의 동참운동으로서 또는 선진조국 창조의 선도운동으로 시민정신을 선진화하고, 농어민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되고, 86아시아올림픽과 88서울세계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1984년 1월 2일 오후 7시경에는 성내리 면사무소 앞 천년기념물 제287호 비자나무(암)에 초등학생들의 불장난으로 화재가 발생, 사천소방서 직원 3명과 소방차 1대가 긴급출동 진화작업을 하였는데 불이 나무둥치 안으로 깊이 인화되어 익일 새벽 6시에 완전 진화 하였으나 지상 3m부위가 불타 상부가 부러졌지만, 다시 소생하여 옛 동헌터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1984년 6월 30일에는 정봉오(鄭奉五) 면장이 정년퇴임하고 제24대 김성엽(金成燁) 면장이 취임하여 역점시책으로 화합과 단결ㆍ근면ㆍ자조ㆍ협동으로 새마을 사업의 생활화, 농어민 소득 증대 사업을 적극 계획 추진하였다.   1981년 10월 1일 검정보건진료소가 개소되어 유갑숙(柳甲淑) 소장이 주재 근무하여 무의촌 면민의 보건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1984년 11월 22일에는 목단, 본촌, 어류지구 경지정리사업과 소류지 설치 사업을 착공하여 경지정리사업은 1985년 6월에 완공하고 소류지는 1986년에 준공되어, 기계와 영농과 전천후 영농에 크게 기여되었다.   1986년 6월 25일에는 본촌보건진료소가 개소되어 안희숙(安熙淑)소장이 주재 근무하고 있다.   1986년 7월 16일에는 와티 새마을 회관이 준공되어 준공식을 가졌다.   1986년 8월 29일에는 농수산부차관 조익래(趙益來)가 경상남도 지사로 취임하고, 동년 9월 16일에는 향토출신 조익래 지사 취임 곤양면민 환영대회가 면사무소에서 성대히 개최되기도 하였다.   1986년 10월 개최된 아시아올림픽 경기에서 한국은 금 55개, 은 44개, 동 66개를 획득, 중국에 이어 종합 2위의 성적으로 국위선양에 크게 기여하였다.   1986년 12월 24일 조익래 경남지사 곤양면 방문시 곤양 소재지 소도읍 가꾸기 사업과 곤양향교보수 및 문화재 등록을 건의하여 공사비 삼천만원의 보조금을 교부 받아 향교를 보수하고 향교의 문화재 등록도 필하였다.   1987년 3월 2일 곤양농공단지조성 유치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농공단지계획을 수립관계요로에 건의하고 입주업체를 유치하기 위하여 김해, 부산, 대구, 서울 등지를 다니면서 농공단지 유치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인 유치 활동을 전개하였다.   ◦추진위원 명단   ㆍ위원장 : 강춘성 ㆍ부위원장 : 김민조, 최영환, 정정일   ㆍ총 무 : 최재원 ㆍ감 사 : 김삼덕기   1987년 3월 15일 면청사 신축으로 인하여 면 임시 청사를 송정 새마을 회관으로 옮긴다는 내용을 신문공고와 더불어 관계요로에 통지하고, 이전을 마치고 3월 21일 11시에 국회의원 안병규, 사천군수(하연승), 경찰서장 등 5백여 명의 면민과 함께 청사 및 보건진료소 착공식을 가졌다.   1987년 6월 10일 제7대 곤양농업협동조합장에 정정일이 재선되어 성대한 취임식을 가졌다.   1987년 8월 27일 예비군 곤양중대본부 청사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1987년 10월 9일 제13회 곤양면민 체육대회를 성대히 개최하여 종합우승에 무고리, 준우승에는 성내리가 획득하여 면민 화합분위기 조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1987년 11월 23일 평민당 진주지구 대의원으로 최응섭이 위촉되어 제13대 대통령 선거 삼천포 지구 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최은일은 평민당 훈련국장에 취임 활동함으로써 이 지역의 대통령 선거전이 극도로 치열하였다.

면사무소준공신문기사

  1987년 12월 26일 곤양면청사 및 보건진료소 신축공사가 준공되어 안병규, 이상민 국회의원과 조익래 도지사를 비롯한 내외귀빈,면민 등 1,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지하 1층, 지상 2층의 철근 콘크리트 스라브조 건물로써 연건평 275평으로, 지하 1층은 서류고로 사용하고 지상 1층은 면장실과 사무실, 지상 2층은 대회의실과 소회의실로 사용한다. 한편 보건진료소 건물도 2층으로 연건평 55평으로 준공되었다.   1988년 1월 19일 동천 앞들 논합배미 사업을 착공 5월 31일에 완공하였다.   1988년 2월 25일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 취임하고 광주사태를 위시한 국내 각 계층간의 갈등과 반목 등을 치유하기 위하여 민주 화합추진위원회(위원 60명)를 시한부로 설치 운영하여 군사 통치ㆍ관권통치와 권위주의에서 ‘보통사람’ 시대를 열어 사회 안정을 도모하였다.   1988년 3월 14일에는 환덕 와티 간 농촌 소득원 도로개설 사업을 착공 12월 말에 준공하였고 동년 3월에 석문 ~ 한월 간 광역권 도로개설 사업을 착공하여 12월 말에 개통하기도 하였다.   1988년 3월 23일 밤 곤양향교 서재문을 파손하고 보관중인 고서(古書)107점(点)을 도난당한 사고가 발생되었다.   1988년 4월 26일 제13대 국회희원 선거에서는 5명의 후보(황성균, 이상민, 최방광, 유홍재, 이순근)가 출마하여 황성균 민정당 후보가 21,385표로 당선되었다.   1988년 9월 1일에는 세계 161개국이 참여하는 사상 최대 서울올림픽 경기대회가 서막되어 인류의 영원한 화합과 전진 그리고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지구촌의 축제로서 오천년 민족사 위에 찬란한 꽃을 피워 영원한 민족의 영광을 갖게 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1988년 12월 12일에는 조익래 경남지사가 퇴임하고 최일홍 지사가 취임하였다.   1989년 1월 11일에는 문국상 예비군 중대장이 퇴임하고 후임으로 한창문 중대장이 취임 하였다.   1989년 9월 7일 곤양농공단지조성 입찰을 실시 고성읍(固城邑) 소재 대창건설(大昌建設)에서 낙찰 시공하여 1990년도에 준공되어 9개 업체(인창기계, 우리전자, 서울직물, 리단무연 보일러, 삼영직물산업, 명진 자동차 부품산업, 한양직물, 조선벽돌요업)가 입주하였다.

농공단지기공 신문기사

  1989년 9월 8일 안도 부락민이 수차에 걸쳐 중완선 불량도로 개보수를 건의 하였으나 조치가 없어, 이를 규탄 관철할 목적으로 주민 100여 명이 경운기 27대에 분승하고 사천군청으로 행하는 도중 행정당국에서 주민의 동향을 인지(認知), 사천군수ㆍ경찰서장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이 현장으로 긴급 출동, 검정리 아방부락 앞에서 주민을 저지, 설득하고 건의사항을 받아드리는 조건하에 전원 귀가 조치하고 다음날 장비를 동원 불량 위험도로 정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1989년 11월 16일 무고ㆍ상평지구 경지정리 사업을 착공하여 1990년 5월 말에 준공하였다.

  1980년대 12ㆍ12사태 이후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 등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초헌법적인 기관을 만들어 전두환이 위원장에 취임, 1980년 5월 17일 24시를 기해 계엄포고령 10호를 발동 김종필, 김대중을 긴급체포하고 김영삼은 가택연금하며 국회와 정당 사무실을 폐쇄했다. 그리하여 5월 18일 광주민주화 항쟁으로 무력충돌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런 사태 속에 최규화 대통령이 돌연 사퇴하고 1980년 9월 1일 유신 헌법의 통일 주체 국민회의에서 전두환은 11대 대통령으로 당선 취임했다. 전두환은 취임 후 민족정기를 바로잡는다는 구실로 사회정화운동을 펴고 헌법을 개정 대통령 임기 7년 단임제를 채택, 선거인단을 선출하고 유신헌법을 폐지하고 민주정의당을 태동시켜 1981년 2월 25일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하여 전두환은 제12대 대통령에 당선 취임하였다. 전두환을 5공 출범 후 정치적 윤리 도덕적 정통성 결여 군사문화로 인한 민주화 요구 불용, 경제 성장에 따른 부익부 등 정책 과오로 인해 정치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이로 인하여 민정당 노태우 총재는 6ㆍ29선언으로 8개항을 선언하고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에서 개헌하여 새 헌법으로 대통령 직선의 5년 임기 단임제로 하고 1988년 2월 25일 제12대 전두환 대통령이 퇴임하고 제13대 대통령으로 1987년 12월 16일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어 1988년 2월 25일 취임 제6공화국의 장을 열었고 역사적인 88올림픽이 개최되어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 국력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담당자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만족도 조사 민원신청  시장에게 바란다  조직도  공지사항  공고/고시/시험 
페이지 수정요청열기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