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 첨단 항공 산업의 메카 > 곤양향토사



곤양향토사

제3장 삼국시대   신라가 562년에 대가야(고령)를 정복함으로써 가야는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 한반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로 일컬어지는 본격적인 삼국시대가 전개된다. 삼국은 보다 강력한 군사력을 구축하여 이를 기반으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영토확장을 위하여 국가간의 각축을 벌였다. 필요에 따라 백제와 신라가, 신라와 고구려가, 백제와 고구려가, 인근 중국과 왜와도 동맹관계를 맺었다가 허물기도 하면서 저마다 영토확장의 전쟁을 벌이는 시기가 도래하였다.   신라 백제 고구려가 각축을 이루는 삼국시대 때의 곤양에 관한 구체적 기록은 아직 발견할 수가 없었다. 다만 백제의 근초고왕(近肖古王, 346~375) 및 그의 아들 근구수왕(近仇首王, 375~384)의 영토확장 전쟁 이후, 후기가야의 번영기를 제외하고는 곤양지역도 백제의 영향권 내에 있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고려사지리지>ㆍ<세종실록지리지>ㆍ<신증동국여지승람>ㆍ<여지도서>ㆍ<진양지>ㆍ<진주목읍지> 등에 모두 “진주목은 본시 백제의 거열성(晋州牧本百濟居列城)”이라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조선조 선조때 실학자 한백겸(韓百謙)의 <동국지리지>에서 “변한의 옛 땅인 경상도 서남쪽의 지리산 일대는 한때 백제가 침거했다.\"하고 있고, 정조 때의 학자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에서도 “진주는 백제의 거열성으로 신라의 서남쪽은 백제에 의해 함락되었다.”고 하고 있는 내용과 같다. 융희 2년(1908)에 발간된 <증보문헌비고>의 「여지고(輿地考)」 중 「변한국」조와 「백제국」조에도 이와 같은 내용을 동일하게 말하고 있고, 고종 원년(1864)에 완성된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지지> 중 「가야강역」조에도 “가야의 서남쪽은 백제에 의하여 공취되었다.”고 하고 있다. 즉 백제 근초고왕의 남진과정ㆍ일본서기의 기록ㆍ고구려 광개토왕의 비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지금의 진주는 백제 근초고왕 24년(369)에 백제에 영속되었으리라고 추정한다. 근초고왕은 마한지역이던 전남북지역ㆍ광양ㆍ하동ㆍ진주지역을 동시에 점령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백제는 무왕 6년(605) 2월에 각산성(角山城)을 쌓았다고 하고 있다. 이 각산성은 삼천포(三千浦)의 고명(古名)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각산봉수(角山烽燧)는 남쪽은 대방산봉수(臺方山烽燧)에 응하고, 서쪽으로는 우산봉수(牛山烽燧)에 응하며, 북쪽은 안점봉수(鞍岾烽燧:泗川)에 응한다, 또 안점봉수는 남쪽은 진주각산(晋州角山:三千浦)에 응하고 북쪽은 망진산봉수(望晋山烽燧:晋州)에 응하며, 우산봉수는 동쪽의 진주각산에 응한다고 했다. 이 각산성이 백제에 의하여 축성되었고, 진주지역은 백제의 거열성임을 생각하여 볼 때 지금의 곤양ㆍ곤명ㆍ서포ㆍ금남 등의 지역은 이 백제의 거열성에 속하여, 이때에도 여전히 포촌현(浦村縣)으로 불려 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우산봉수(牛山烽燧)가 바로 현재 곤양의 남산에 복원되어 있는 그 봉수대이다. 그 후 백제는 지금의 함양인 속함성(速含城), 합천인 대야성(大耶城), 창원에는 진례성(進禮城)까지 공략하여 그 세력을 넓혔다.   하지만 백제는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에 의하여 멸망(660)했다. 왜의 기내조(畿內朝)가 백강(白江:白馬江)전투에 구원군을 파견하여 백제의 부흥군을 지원하였으나 그 역시 나당연합군에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어 신라 문무왕 3년(663) 2월에 장군 흠순(欽純)과 천존(天存)이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의 거열성(居烈城:晋州)을 공취하여 7백여 명을 참살하고, 이어 거물성(居勿城), 사평성(沙平城)을 공격하여 항복받았으며, 덕안성(德安城:어느 곳인지 定說이 없음. 日本事紀에는 安德城)을 공격하여 1,070명을 참살했다고 하였다. 일본서기에도 천지 2년(663) 2월조에서 “신라인이 백제의 남반사주(南畔四州)를 불태우고 점령했다.”라고 하고 있어서 위 4개의 성은 백제의 남부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후 남부 전역에 진을 치고 있던 백제의 부흥군은 완전히 소멸됐고, 아울러 거열성(居烈城:晋州)은 이때 신라에 통합되었으며, 주류성에 남아 있던 부흥군도 이 해 9월에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다.   이 전투를 계기로 곤양지역도 백제의 한 지역에서 신라의 한 지역으로 통합되게 되었다.


담당자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31-2714
최종수정일
2020-07-28 15:51:45
만족도 조사 민원신청  시장에게 바란다  조직도  공지사항  공고/고시/시험 
페이지 수정요청열기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닫기

TOP